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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악마와 계약한 사나이

웹소설 > 일반연재 > 공포·미스테리, 퓨전

키노91
작품등록일 :
2018.09.17 02:58
최근연재일 :
2018.11.17 07:05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5,484
추천수 :
331
글자수 :
305,896

작성
18.09.21 05:22
조회
408
추천
6
글자
20쪽

루시퍼(Lucifer)(5)

DUMMY

몇 개월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 빠르게 흘러갔다. 결국 프로젝트는 진행되었고, 몇 번의 협상 끝에 바이 영은 금액이 올라 3220억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에 인수되었다. 그 이후 인수한 기업에 대한 활용방안 등이 모색되었지만 대부분 쓸모없는 안들이었고,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하더라도 정작 인수한 바이 영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국내 자원 가공을 할 수 있는지 경제성 조사를 해봤지만, 그 역시 오히려 국내에서 가공하는 것이나 원산지에서 가공해 들여오는 것이 더욱 경제적인 것으로 드러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3220억 원이 공중으로 사라져버린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수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바이 영을 다시 팔려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자원개발팀의 과제가 아니어서 철저하게 배제된 상태라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재무팀과 총무팀, 그리고 회장 직속의 기획팀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생전 처음 듣는 기업에서 인수하려 한다는 것과 인수 금액이 고작 100억 원 남짓밖에 안 된다는 점이었다. 3000억 원 넘게 들여 산 기업을 고작 100억 원에 되파는 것이었다.

사실 이런 프로젝트가 그저 내부적으로 진행되고, 마무리 되면 별로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누구의 의도인지, 아니면 관리가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언론이 알게 되면서 문제가 커지게 되었다.

연일 뉴스에서는 잘못된 투자에 대한 부분을 문제 삼고 있었고, 이 투자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즉, 언론도 말도 안 되는 기업 인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여기에 정치권이 얽히게 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었다.

자원개발팀은 물론 다른 팀 직원들도 삼삼오오 모여 뉴스 이야기를 나누며 걱정을 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이 하는 걱정은 자신들에게 튈지도 모르는 불똥에 대한 우려였다.

“정말 우리는 괜찮은 거겠죠? 이사님이 책임지시지 않겠어요?”

임현수 대리가 장기영 과장을 붙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장기영 과장의 표정도 그리 밝지는 않았다.

“유건호 이사가 책임지게 하겠어? 회장 아들인데? 희생양이 필요할 거야. 꼬리 자르기 알지?”

장기영 과장의 이야기는 결국 사업을 추진했던 주체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명령을 받아 일을 추진했던 실무진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희찬에게 인턴이면서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희망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였다. 동료 인턴들은 희찬에 대해서 수군거리다가 그가 나타나면 피하기 일쑤였다.

“오빠!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그나마 퇴근 이후에 잠깐 만나는 연정만이 희찬에게 유일한 위로를 해주곤 했다. 하지만 연정 역시 최근 눈에 띄게 희찬과의 만남을 멀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의 팀 일이 바빠서라고 말했지만 인턴들 사이에서 들리는 소문에는 유부남과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연정아! 너 소문이 있던데......”

한 번은 희찬이 조심스럽게 물었었다.

“무슨 소문?”

“유부남과 만난다는......”

“오빠! 내가 미쳤어? 내가 뭐가 아쉬워서 유부남을 만나? 그리고 이렇게 능력 좋은 오빠를 옆에 두고 말이야.”

희찬의 질문에 연정은 정색을 하며 전혀 아니라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 말을 희찬은 철썩 같이 믿었다. 아니 믿어야 했다. 하지만 소문은 점점 더 확대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연정의 연애 상대가 같은 팀의 이우현 부장이라고 특정되기까지 했다.

그러고 보니 연정이 최근 부쩍 이우현 부장과 함께 있는 것을 회사 내에서 많이 목격하곤 했었다. 같은 부서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빈도가 너무 잦은 것이 문제였다. 심지어 외근을 가더라도 이우현 부장과 연정이 함께 가고, 퇴근도 이우현 부장이 차로 시켜 주고 있었다. 인턴들 사이에서는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었다.

희찬은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자신이 참여했던 프로젝트가 망해버렸고, 그 문제로 언론에서도 시끄러운 마당에 그나마 의지가 되었던 연장마저 자신의 곁을 떠나버린다면 지금 그에게는 아무도 남지 않는 것이었다.

부실 기업 인수 건은 결국 국가기관이 조사에 나서게 되었다. 검찰이 나서서 유건호 이사부터 한 명씩 소환해 조사를 진행했다. 연일 언론에서는 새로운 정경유착이라고 대서특필했고, 이번 프로젝트에 연루된 국회의원에 대해 조명이 되고 있었다.

희찬은 회사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멍한 상태로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물론 희찬뿐만이 아니라 자원개발팀의 대부분이 그랬다. 이사를 시작으로 부장과 차장은 물론 장기영 과장까지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임현수 대리와 나머지 사원들은 별도로 수사관이 면담을 진행해 조사를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작 희찬은 조사에서 배제된 상황이었다.

검찰의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상황에 겁도 먹고, 긴장도 했던 희찬이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희찬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언론에서도 희찬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하긴 누가 인턴에 관심을 갖겠어?”

인턴 동료들이 희찬에게 건네는 말 한 마디가 위로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뉘앙스를 남긴 채 희찬의 귀에서 맴돌았다. 내심 희찬은 그 말대로 자신은 그냥 넘어갔으면 했다. 사실 조사를 받는다고 해도 희찬이 아는 것은 극히 일부분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자원개발팀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도 정작 희찬은 자원개발팀 소속이면서 그들이 무슨 일을 하며 바쁜지를 알지 못했다. 희찬이 업무를 달라고 다가가리가도 하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놀라거나 했다. 그리고 희찬을 자꾸 외근을 시키거나 다른 부서 업무를 도우라며 자원개발팀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다. 문제는 자원개발팀 안에 희찬만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 아니라 민유섭도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희찬은 이때 알아차렸어야 했다. 최소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느꼈어야 했다. 그러나 희찬은 그저 프로젝트 수습에 대한 일을 자신에게 시키지 않으려는 배려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유섭은 희찬과 달리 회사의 의도를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계획이라는 것을 말이다.

희찬은 민유섭을 찾아갔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둘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할 뿐이었다. 졸지에 민유섭과 희찬이 회사 안에서 외톨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며칠 후, 경찰이 회사에 와서 희찬과 민유섭을 찾았다. 희찬은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자신을 찾는 경찰에게 다가갔다.

“저를 찾으셨다고요?”

희찬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민유섭씨! 강희찬씨! 당신을 업무방해 및 배임 혐의로 체포합니다.”

경찰의 말에 민유섭과 희찬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었다. 이후로 경찰이 미란다 원칙을 고지했지만 그 말이 희찬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모든 직원들이 놀란 표정으로 민유섭과 희찬을 바라보았다. 경찰이 다가와 두 사람의 손에 수갑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희찬은 팔을 뿌리쳤다.

“잠깐만요! 제가 왜요?”

얌전히 수갑을 찬 민유섭과 달리 희찬이 강하게 항의했다.

“그건 가서 얘기하시죠. 얘기할 시간 많으니까.”

희찬은 결국 제대로 반항한번 못해보고 경찰들에 끌려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검찰청이었다. 민유섭과 희찬은 다른 방으로 옮겨져 따로 조사를 받았다. 검찰의 조사는 가혹하게 이어졌다. 문제는 손해를 본 기업 인수 프로젝트의 상당부분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검찰이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이 안 되잖아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런 프로젝트를 주도합니까? 전 그저 인턴에 불과합니다.”

희찬이 아무리 주장을 해도 조사에 임하는 검사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하지만 검사가 내 놓는 증거들은 모두 희찬이 불리한 증거들뿐이었다.

희찬이 문제제기했던 기업 등급 평가 업체의 선정에 민유섭과 희찬이 관여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업에 대한 정보를 조작해서 보고했으며, 현장 실사의 조사 보고서를 조작한 것 역시 민유섭과 희찬으로 되어 있었다. 희찬에게는 말도 안 되는 너무 억울한 상황이 펼쳐져 있는 것이었다.

“이게 말이 안 되잖아요. 인턴에 이걸 어떻게 합니까? 유이사님이랑 부장님이랑 차장님 등이 왜 제 얘기를 듣겠어요?”

희찬은 자신의 억울함을 계속 이야기 했지만 검사는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여기 나온 것들은 다 거짓말입니다. 조작된 거라구요.”

희찬이 억울해서 소리쳤다.

“그래? 다 조작이야? 지금 모두 한 목소리로 너랑 민유섭을 지목하고 있어. 전부 다. 너만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민유섭도 얌전히 인정하고 있는데 왜 너만 딴 소리야?”

검사가 희찬에게 해 준 이야기였다. 희찬은 어이가 없었다. 민유섭이 인정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너무나 기가 막혔다.

“민유섭 선배가 그럴 리가 없어요.”

“그 친구는 벌써 인정했어. 너도 인정하고 빨리 끝내자.”

검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희찬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희찬은 문득 직원들이 이제껏 자신을 배제하고 하던 일이 이런 작업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언론에 공개가 되어 문제가 된 사업에 대한 희생양이 바로 민유섭 선배와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실기업 인수 프로젝트의 책임자와 중책을 맡았던 자들은 모두 빠져나가고, 오히려 말단인 인턴과 사원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는 것. 이것이 바로 한정그룹의 작전이었다.

검찰에서는 민유섭과 희찬에 대한 구속영자이 청구되었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검찰의 청구를 기각했다. 새벽에 검찰을 나서는 민유섭과 희찬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제 갈길을 갔다. 둘이 만나서 얘기를 해본들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희찬은 뒤로 돌아 멀어지는 민유섭의 등을 봤다. 그에게 왜 인정했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다음날 회사로 출근한 희찬을 동료 인턴들과 직원들은 마치 벌레 보듯 했다. 자신이 아니라고 그 자리에서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미 희찬이 저지른 일로 회사 내의 분위기는 결정이 된 것 같았다. 이것이 대기업의 생리라는 것을 희찬은 이번에 처절하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엄청난 뉴스가 터졌다. 새벽에 함께 헤어졌던 민유섭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시신으로 발견된 것이다.

어떻게든 위기를 벗어나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는데, 검찰 조사 후 정작 민유섭은 그런 결말을 선택한 것이다. 민유섭의 시신 옆에는 컴퓨터로 작성되어 인쇄한 유서가 발견되었다. 유서에는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간다고 적혀 있었다.

희찬은 뉴스에서 나온 민유섭의 죽음과 유서의 내용을 보고는 믿을 수 없었다. 민유섭 역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억울하다고 했었다. 그리고 민유섭 역시 사원이라 프로젝트에서 잡일만 할 뿐 중요한 업무를 하지 못했다. 그것은 희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제 정말 세상에 혼자만 남은 것 같았다.

회사에서는 희찬을 인턴 사원에서 해고했다. 회사에 피해를 입힌 책임을 묻겠다며 소송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형사소송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고, 민사를 별도로 제기해 구상권을 청구하겠다는 것이 회사의 움직임이었다.

한정 그룹을 그만두게 된 희찬은 작은 박스에 자신의 물건들을 하나 둘 채웠다. 회사에서 성공해 정직원이 되겠다는 꿈도, 그리고 연정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겠다는 꿈도, 성공해서 빚도 갚고 행복하게 잘 살겠다는 소박한 꿈도 모두 날아갔다. 희찬에게 오늘은 최악의 날이었다.

희찬은 마지막으로 직접 손으로 유서를 작성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선배 사원의 죽음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해야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렇게 모든 짐을 챙겨 나오는 희찬에게 다른 직원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간혹 눈길을 주는 사람들도 증오와 멸시, 혐오의 시선만을 던졌을 뿐이었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희찬은 연정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연정은 이우현 부장과 찰싹 달라붙어 환하게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 희찬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허탈해하며 사무실 밖으로 나온 희찬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왔고, 스스로 뛰어내린 것이다. 그런데 죽기는커녕 이렇게 어둠 속에서 루시퍼를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금의 제 얘깁니다.”

희찬이 허탈해하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살아난다고 해도 살아갈 희망이 없어요. 이제 재판도 받아야 할 테고, 돈도 없거든요. 사채 빚에 학자금 대출도 못 갚았고...... 아르바이트로 갚는 건 꿈도 못 꾸죠. 다른 회사 취직도 못할 겁니다. 그러니 내 인생은 이제 끝난 거죠. 애인도 유부남이랑 눈 맞아 떠나고...... 참 그지 같은 인생이에요.”

말을 마친 희찬이 다시 깊은 한숨을 쉬었다.

“꼬일 대로 꼬여있긴 하네. 너처럼 꼬인 사람도 오랜만에 보긴 한다.”

루시퍼가 웃으며 말했다.

“나 만큼 꼬인 사람이 또 있어요?”

“생각보다 많아서 놀랄 걸. 그렇게 인생에서 모든 안 좋은 것들이 모이는 때가 있어. 그걸 잘 피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인생이지. 인간들의 삶은.”

희찬이 문득 루시퍼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자꾸 얼굴을 쳐다봐?”

루시퍼가 되물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어떻게 날 찾아온 거죠? 부른 기억이 없는데.”

희찬은 최소한 자신이 악마를 불러내는 기술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악마가, 그것도 루시퍼라는 악마의 왕이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것이 신기했다.

“나도 모르게 악마 소환술 그런 걸 했나요?”

희찬의 질문에 루시퍼가 크게 웃었다. 너무 크게 웃어서 누가 듣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물론 사방은 어둠에 잠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오해 하나, 악마 소환 그런 건 다 뻥이야. 소환술을 하면 그냥 타이밍 보다가 짠하고 나타나주는 거지. 문제는 절실함이야. 절실하지 않으면 뭔 짓을 해도 우린 관심 없거든.”

“절실함? 신처럼 말하네요.”

“신? 불쾌한데? 지금 신이 사람들이 절실하다고 뭐 하나 도와준 게 있나? 없어. ‘세상은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거다.’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딱 끊어버렸는데 뭐. 그게 다 예수가 자신 있다고 너무 자만해서 그래. 좀 도와달라고 해도 될 걸.”

“아뇨. 아뇨. 그 얘기는 됐고, 그럼 난 절실해서 나타난 겁니까?”

“절실하다기보다는 세상을 원망했잖아? 신도 원망하고. 그게 재미있어서 와봤어. 어떤 친구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하긴, 루시퍼라고 해도 제 문제를 해결하긴 어렵겠죠? 이해합니다. 그냥 재미로 왔다는 거. 그러니 전 그냥 죽을랍니다. 다시 보내줄 수 있죠?”

희찬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런 희찬을 보며 루시퍼가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왜 그렇게 생각을 하지?”

“인간들 문제잖아요. 빚이야 돈이 많으면 갚는 거니까 그렇다고 쳐도, 재판을 어떻게 해주겠어요. 완전히 다들 한 통속이 돼서 나 하나 잡자고 덤벼들 텐데 그걸 어떤 수로 이겨요? 그리고 앞으로 내가 갖게 될 명예나 평판은 어쩌구요. 인생 끝난 거죠. 돈만 가지고 세상 사는 건 아니거든요.”

희찬은 체념하듯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악마가 월 할 수 있는지, 뭘 해줄 수 있는지 모르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몇 가지 보여주지.”

루시퍼가 말을 마치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둠 속에 이제 희찬 혼자만 남아 있었다.

“뭐야? 어디 갔어? 여보세요? 이봐요?”

희찬은 어둠 속에 혼자 남은 것이 불안한 듯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누군가 희찬의 어깨를 뒤에서 톡톡 쳤다. 희찬이 놀라며 뒤를 휙 돌아보았다. 그러나 연정이 태연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어떻게 그녀가 여기에 있는지 희찬은 알 수 없었다.

“여긴 어떻게......”

희찬이 연정에게 다가가려 하다가 멈칫했다. 어딘지 모르게 연정의 분위기와는 다른 것 같았다.

“감이 좋네.”

연정이 말했다. 아니 연정으로 보이는 사람이 말했다. 목소리도 연정이었다. 하지만 희찬은 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루시퍼?”

희찬이 물었다. 그러자 연정의 모습이 변하며 이번에는 유건호 이사로 바뀌었다. 거만한 표정에서부터 모든 것이 똑같았다.

“모습 변하는 거 대단하긴 한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

자꾸 자신의 눈앞에서 모습을 바꾸는 루시퍼에 짜증이 난 희찬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임현수 대리로 변해있던 루시퍼가 다시 제 모습으로 돌아왔다. 문득 맨 처음부터 봐오던 루시퍼의 모습이 원래의 모습인지도 궁금해졌다.

“하긴, 하지만 잘 알아둬. 우린 많은 걸 할 수 있어. 그리고 악마와의 계약을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부와 명예, 권력, 여자, 삶 등. 희찬군이 가진 고민 따위는 아무것도 아냐. 그냥 한낱 귀찮은 모기 정도? 그러니 나와 계약을 해보는 게 어때?”

루시퍼가 환하게 웃으며 희찬에게 말했다. 하지만 희찬의 표정은 확신을 못하는 듯 했다.

“악마의 왕이 직접 이렇게 영업도 합니까?”

“뭐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가끔 해. 흥미가 생기면. 어때?”

“정말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겁니까?”

“그건 자네 하기 달렸어. 자네가 원하는 게 뭐냐에 따라서 다르지.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걸 원한다면 당연히 해결되겠지. 하지만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걸 원할 수도 있어. 그러니 그 부분은 잘 고민해야 할 거야.”

루시퍼가 청산유수처럼 말을 했다.

“와! 정말 최고의 영업사원 같네요.”

“그럼. 경력이 얼만데,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한 영업인데 잘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자신만만한 루시퍼의 표정과는 달리 희찬은 망설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엄청난 시련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았다.

“시간을 줘요.”

희찬이 어렵게 말했다.

“물론. 시간을 줘야지. 힘든 결정이고, 미래가 걸린 중요한 결정일 테니 충분히 시간을 줘야겠지. 정확하게 24시간을 줄게. 잘 생각해봐.”

루시퍼가 희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24시간? 너무 짧은 시간 아닌가요?”

희찬이 놀라며 물었다.

“무슨 소리. 자네 앞에 당장 놓인 일들을 해결하려면 빠를수록 좋아. 그럼 내일 보자고.”

희찬이 무언가 더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루시퍼는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눈앞을 가득 채우고 있던 어둠이 사라지고 갑자기 환한 빛이 눈이 시리도록 앞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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