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개가 되다

“너는 지은 죄가 있어 다음 생엔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할 거다.”
어느 날, 꿈속에 나타난 저승사자가 이렇게 말했다. 신기할 정도로 생생한 꿈이었지만 동시에 이게 꿈이라는 걸 명확히 알 수 있는 꿈이었다. 희헌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까만 용포를 입은 남자- 흔히 생각하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아닌 그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예?”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용포를 입은 남자를 본다고 저승사자라 여겨지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희헌은 지금 자기가 꿈을 꾸고 있단 걸 자연스레 알았듯, 눈앞의 저 남자가 저승사자라는 것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지은 죄라 그대로 값을 다 치루기에는 가혹하고, 이후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있었으니 그 정성을 보아 찾아왔다.”
자신이 개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 건 오히려 넋을 놓은 채 눈앞의 용포남에게 이런 이야기를 듣던 도중이었다. 이성이 찾아와 희헌의 머리 끄댕이를 잡고서 이건 개꿈이라고 속삭거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용포를 입은 남자의 말은 멈추지 않았다.
“장차 부잣집 개라도 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착하게 살도록 해라. 다행히 어린 시절의 죄 이후 더 죄의 무게를 더하진 않았으니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것이다.”
희헌은 ‘지금 무슨 소리 하시는 거냐’고 묻기 위해 입을 열려 했는데, 어느 순간 눈을 깜빡거리다 보니 눈앞에 용포를 입은 남자는 없고 하얀 천장만이 들어왔다. 약간 시선을 옆으로 돌리자 둥그런 전등의 형태가 보였고, 그 옆으로 돌리자 벽 모서리가 보였다.
벌떡 상체를 일으킨 희헌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다가 이곳이 자신의 원룸 안이라는 걸 떠올리고서 식은땀을 닦았다.
“뭐야 그건?”
참으로 기묘한 꿈이었다. 게다가 별 거 없는데도 기분 나쁜 꿈이었다. 부잣집 개로라도 환생하고 싶으면 착하게 살라니.
희헌은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 물을 틀고 세수를 하다 거울을 보니, 눈 밑이 퀭한 남자가 바보처럼 서 있는 게 보였다.
“재수없어.”
중얼거린 희헌은 차가워진 손으로 눈두덩이를 꾹꾹 누르다가 수도꼭지를 잠그고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어둠 속에서 야광으로 빛나는 벽시계는 아직 지금 시간이 새벽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희헌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도로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잠을 자려고 할수록 아까 꿈에서 본 저승사자가 떠올랐고, 그가 말한 ‘어린 시절의 죄’라는 부분이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어릴 때 저지를 짓이니까. 뭣 모를 때 한 짓이니까. 이따금 죄책감을 견디기 어려울 때면 스스로를 용서하기 위해 하던 그런 생각이 다시 한 번 떠올랐고, 뒤이어 부끄러워졌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던데. 그런 꿈을 꾼 건, 어릴 때 일이란 이유로 스스로를 용서하려하는 내가 한심해서가 아닐까?’
밤새도록 몸을 뒤척였지만 희헌은 결국 잠들지 못했고, 무거운 머리를 이고서 다음날 회사로 출근해야 했다. 덜컹거리는 아침의 지하철 속 사람들 안에 파묻힌 채 희헌은 저승사자가 한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착하게 살라고.’
개꿈이라면 개꿈일지도 모르겠지만 꺼림칙한 개꿈이었고, 게다가 뼈가 있는 개꿈이었다.
본래도 희헌은 나쁜 청년은 아니었다. 오히려 각박해지고 험악해진 세상 속에서 ‘나름’ 사람들에게 착하단 이야기를 듣는 축이기도 했다. 진짜 착한 사람들에 비교하자면 부끄러울 정도로 빈약하지만, 원체 차가운 세상이다보니 상대적으로 착해 보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희헌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창 밖의 풍경을 쳐다보다가, 눈앞의 커다란 창문이 새까매지자 눈을 감았다. 그래. 착하게 살아서 나쁠 게 뭐 있겠어. 착한 게 별거 있나.
‘이렇게 해서라도 마음이 편해진다면··· 괜찮겠지, 그것도.’
그렇게 해서 27세의 희헌은 ‘착한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고, 그 결심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다가··· 개가 되어 환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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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되어 본능에 모든 걸 맡긴 채 살아가던 희헌이 처음으로 ‘어라? 내가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엄청나게 거대한 개의 앞발에 눌렸을 때였다.
눈을 깜빡거리던 희헌은 그 개가 자신을 향해 커다란 혀를 들이미는 걸 보고 기겁해서 팔을 휘젓다가, 그 개가 그 혓바닥으로 자신을 살뜰하게 핥아주는 걸 알고서 더욱 기겁해 축 늘어졌다.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이번에도 얼마 가지 않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개가 자신을 보살펴주는 중이란 걸.
제대로 떠지지도 않는 눈 안에 들어온 세상은 올망졸망한 강아지들과 하얀 털, 늘 혓바닥을 내밀어 핥아주는 커다란 개의 다정한 까만 눈, 그리고 이따금 나타나 개밥을 주고 가는 왕발, 커다란 개가 주는 젖. 이런 것들 뿐이었다.
희헌은 어미개가 주는 젖을 먹고, 왕발이 나타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형제 강아지들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 진짜 자신이 개로 환생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저승사자의 말처럼 앞으로 부잣집 개가 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승사자가 아주 헛말을 한 게 아닌 건 확실했다.
그래서일까. 형제들이 하나하나 사라져 갈 때마다 희헌은 마음 졸이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평범한 개라면 그저 어미에게서 억지로 떨어지는 형제들을 보며 슬퍼하겠지만, 희헌은 어찌된 일인지 인간일 적의 기억이 너무 강했다.
그러다보니 어미개가 야생개가 아니고, 어미개의 주인이 새끼들을 함께 키울 마음이 없단 것도 알 수 있기에 당장의 일보다는 좀 더 미래의 일이 자꾸 신경쓰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개 팔자는 주인에 따라 극과 극으로 달라지니 말이다. 설령 진짜 부잣집 개가 된다 해도 별 희한한 싸이코패스 주인을 만나면 끝이었다.
그리고 하얗게 눈이 내리던 날. 마침내 희헌도 ‘왕발’에게 들려 어미개의 곁을 떠났다. 희헌을 안고 가며 ‘왕발’은 이렇게 말했다.
“너는 무가의 개가 되는 거다.”
아직 강아지였던 희헌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꼬리만 달랑거렸다.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판단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만약 주인이 노란 싹수가 보이는 못된 어린애이거나 동물학대의 기질이 보이는 사람이라면 당장에라도 도망을 쳐야지, 생각하며 희헌은 얌전히 왕발의 품에 안겨 있었다.
왕발의 품에 안겨 마차에 탄 희헌은 처음으로 자신이 환생한 ‘세상’을 보면서 입을 벌렸다. 느릿하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희헌이 생각한 어느 도시와도 달랐기 때문이었다.
서울, 뉴욕, 도쿄, 모스크바, 파리, 앙카라, 캔버라, 카이로··· 세계 지리 시간에 보았던 각종 사진들을 죄다 뒤져 보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굳이 비슷한 걸 고르자면 중국과 한국의 약 500년 전쯤 느낌이 오긴 했다. 그렇지만 영화나 드라마, 민속촌에서 볼 때와 달리 건물들이 하나같이 번쩍번쩍이는데다 꽤 고층 건물들도 많아서 과거처럼 보이진 않았다.
사람들의 의복은 한푸에 가까운 듯 보였으나 어느 나라 어느 시대라 딱 잡아 말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했고, 머리카락은 남자건 여자건 기본적으로는 다 길었지만 이따금은 짧은 머리카락에 짧은 반바지나 치마를 입은 이들도 있어서 더욱 난해했다.
도대체 내가 어디에서 환생한 거지? 희헌은 혼란스러워졌다. 단순히 어느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을 거라 여겼던 추측은 깨진 지 오래였다.
그러는 사이 마차는 거대한 벽으로 둘러쌓인 집의 대문 안으로 들어갔고, 희헌은 왕발의 품에 안긴 채 들려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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