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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 혼자 영구정지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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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온후
작품등록일 :
2018.01.27 03:16
최근연재일 :
2018.02.17 20:1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169,092
추천수 :
33,303
글자수 :
115,328

작성
18.02.09 00:17
조회
42,608
추천
1,460
글자
9쪽

015. 검의 노래

DUMMY

<푸른 산호의 신이 여자를 두고 가라고 말합니다.>

<오래된 밤의 신이 당신의 행동에 코웃음을 칩니다.>

<죽은 꿈의 신이 당신의 무모함에 혀를 찹니다.>


수많은 신(神)들은 강태산의 행동을 말렸다. 여자를 데리고는 결코 정상에 닿을 수 없을 것이라며 부채질을 했다. 확실히 강태산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으니까. 남을 업고 산을 오르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는 미련함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정상(頂上).

그것은 사람에게 강렬한 고취를 가져다주는 단어다. 정복의 대상이며 모든 이들의 목표가 되는 것. 높을수록, 그곳을 정복하는 대상은 다수가 될 수 없다. 하물며 무한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멸망한 세계의 산이라면 두 말할 게 없었다.

하지만 오로지 강태산에게 있어서만큼은 이 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마의 바다에서 세상의 끝을 보았다. 별을 만들고 은하수를 형성하여 새로운 ‘길’을 만든 선지자. 벽을 부수고 한계를 넘어 300년이란 시간 동안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 선각자(先覺者)였으므로.


“멈춰. 이대로 가다간 너, 죽을 거야.”


여자는 다른 신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말렸다.

멸망한 세계. 죽지 않는 이 세계에서 죽음을 논하다니. 우스운 이야기였지만 그 정도로 강태산의 상태를 심각했다.

결손 된 신체가 조금씩 삐걱되며 마침내 부서지고 있었다. 저주 꽃으로 억지로 묶어놓은 상처 따위가 썩고 부패하며 심각한 냄새를 풍겼다.

머지않아 그의 신체는 완전하게 바스라질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게 된 순간 그는 멈추게 될 것이고 억겁의 시간 동안 자신을 잊어갈 터였다. 모든 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 세계에서 망각은 곧 죽음을 뜻했다.


“제발 나를 버려! 미련한 것에도 정도가 있지!”


여자의 만류에도 강태산은 꾸역꾸역 발을 움직였다. 반쯤 박살난 발목과 끊어진 인대를 무리하게 혹사시키며 한계로 달려가는 중이었다. 몇몇 곳은 이미 썩고 문드러져 뼈를 드러냈다. 묵묵부답으로 멸망한 세계의 저주에 침식(侵蝕) 당한 남자는 오로지 산을 오르고자 하였다.


“제발······ 이러는 이유가 뭐야? 나 같은 걸 업고 가는 이유가 뭐냐고?”

“당신은 착한사람이니까.”


오랜 시간을 거쳐 강태산은 겨우 한 마디를 꺼냈다.

착한사람.

미쳐버린 세계에서, 그녀만이 유일하게 그를 응원했으니까.

더불어 3억 년이란 시간 동안 자신을 지켜온 그녀가,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통을 겪었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으니까.

여자는 그런 강태산의 주장에 즉시 반박했다.


“고작 그런 이유야? 아니! 난 착하지 않아.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죽음을 방관해왔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 그래서 벌을 받은 거야.”

“······.”

“다른 건 몰라도 이 세상이 멸망할 때의 기억은 남아있어. 난 그들을 지킬 수 있음에도 지키지 않았어. 내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랬던 기억이 나.”

“······.”

“규칙. 아집. 고작 그런 것들을 준수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 사람들이 죽어가며 살려달라고 부르짖을 때에도, 나는 그냥······ 지켜만 봤단 말이야.”


여자의 말에는 후회가 가득했다. 그저 방관만 했던 자신이 미워서, 너무 미워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과거에 무엇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녀가 깊이 후회하고 있으며 용서 못할 대죄를 저지르진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구해낼 가치가 있었다.


“너의 길을 가. 나는, 그래. 내려오면서 데려가도 되니까.”

“닥쳐.”


강태산이 강하게 한 마디를 쏘아냈다.

그녀에게 하는 말은 아니었다.

강태산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산호의 신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여자를 버리고 갈 것을 권유합니다.>

<오랜 된 밤의 신이 당신의 말에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죽은 꿈의 신이 당신의 실패에 유감을 표합니다.>


신이라 하여 모두가 선한 것은 아닌 듯싶었다. 저들에 비하면 굼뜬 신은 굉장히 양반이었다. 선악과를 던져주고 시험에 들게 한 건 조금 그랬지만 적어도 그는 다시 루시와 재회를 하게 해주었다. 적어도 인연(因緣)을 우습게 보는 신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데 저 신들은, 목표를 위해선 그저 버리라고만 말한다. 심지어 벌써 실패를 논하는 신마저 있었다.

강태산이야말로 코웃음을 쳤다.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 둘 강태산이 아니다.

정상은 분명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조금만 더 노력하면, 분명히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아······.”


여자가 신음을 토했다.

어느 순간 강태산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뼈가 닳아 가루가 되어 그의 몸을 지탱하지 못하게 됐다.

강력한 의지도 결국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 그녀를 업고 가지만 않았더라면, 충분히 홀로 정상에 오를 수 있을 터였다.


“안 돼.”


여자는 움직이려고 했다. 남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다.

신체가 완전히 망가진 그는 의식을 잃고 있었다.

망가진 신체에 저주가 깃들자, 깊은 잠에 빠진 것이다.

이 잠에서 깨어나면······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선 안 돼.’


하지만 그녀의 몸은 굳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3억 년이란 시간 동안 돌덩이처럼 변한 신체. 그녀는 자신의 몸뚱이를 저주했다.


“움직여······ 제발 움직여······.”


유일하게 움직이는 건 입과 눈뿐이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로는 결코 그를 일으켜 세울 수 없었다.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 멸망한 세계에서, 이미 끝장나버린 이 미쳐버린 세계에서, 다른 이를 챙기며 산의 정상으로 오르려고 한 사람은.

왜 정상에 오르려고 했던 걸까.

모르겠다. 그녀를 포함한 모두가 어느 순간 본능처럼 그곳으로 향했다. 오르고, 싸우고, 틀어지며 그렇게 잊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정상에 오르게 되면 모든 걸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채찍질했다. 필사적으로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강태산. 그가 보여준 선의를 위해서라도. 그는 결코 여기서 끝나선 안 된다.


‘할 수 있어. 넌,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강태산이 그랬다. 강태산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올곧게 한 길만을 가는 사람. 그 눈동자는 그녀의 영혼 깊숙하게 각인되어버렸다.

과거에는 그녀도 그런 사람이었을까. 설혹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3억 년만에 처음으로, 그녀에게 꿈이 생겼다.


“순례자.”


그는 순례자였다.

이 산에 오를 자격이 있는 사람.

그러니, 오르게 해주고 싶다.

정상을 보게 만들고 싶다.

그녀는 끊임없이 노력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수십 년, 어쩌면 그 이상의 시간 동안 계속해서.

그러자 바위에 물이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굳었던 몸이 조금씩 풀리며 마침내 아주 약간의 신체기능을 회복한 것이다.

마침내 양손이 자유로워졌을 때, 그녀는 그를 붙잡고 나머지 한 손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 *


강태산이 눈을 떴을 때, 그의 몸은 깊은 물속에 잠겨있었다.

산의 정상. 산의 정기가 집중 된 그 장소에서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곧 그의 옆에 검 한 자루가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검을 본 순간, 그는 왜인지 모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한 눈에 알아봤다.


‘그녀로구나.’


이상한 일이었다.

검이 그녀라니.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강태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쥐었다.

지이이이잉-!

검이 울었다. 마치 오랫동안 그를 기다려왔다는 듯이 공명(共鳴)하였다.

순백의 검신. 아름다우며 기품이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검을 그는 본적이 없었다. 하물며 그 속에 내재된 힘은 무서울 정도였다.


“어떻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 한 남자가 있었다.

전신에 붕대를 감은, 멸망한 세계의 신.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처음으로 감정의 기복을 보이며, 강태산이 쥔 검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내가 잃어버린 검을 네가 쥐고 있는 것이냐?”


강태산은 시선을 내려 다시 검을 보았다.

함께 산을 올랐던 그녀는 검이었다.

3억 년간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신의 검.

그녀가 정상에 오르며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남자는 이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매우 화가 난 기색으로 말했다.


“내놓아라. 그녀는 오로지 나만이 쥘 수 있으니!”


그의 얼굴엔 고집이 가득했다.

순간 검의 기억과 노래가 강태산의 뇌리에 흘러들어왔다.

규칙을 준수하는 자.

남자는 세계의 멸망을 수수방관하였다.

신이니까.

신은, 속세에 개입해선 안 되니까.

그녀는 그와 함께 세계의 멸망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 따위 거지같은 규칙 때문에.

결국 버티다 못한 그녀는 도망갔다. 산으로. 높은 곳으로. 유일하게 그가 찾지 못할 공간으로.

동시에, 강태산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었다.


‘그를 죽여야겠구나.’


이 닫힌 세계를 해방시키기 위해선, 신의 죽음이 필요하다.


작가의말

에고공. 늦어서 죄송합니다. 항상 마무리하는데 시간이.. ㅠㅠ

부디 즐겨주시길!

아, 그리고 재밌게 읽으셨다면.. 아시죠?! ㅎㅎ


*

miri2527님, 빠방님아루믹님, 풍혼무님 후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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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3. 굼뜬 신의 권능 +122 18.02.16 3 0 10쪽
23 022. 천계상점 +114 18.02.15 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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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5. 검의 노래 +69 18.02.09 12 0 9쪽
15 014. 순례자 +84 18.02.08 12 0 9쪽
14 013. 신의 사랑을 받는 남자 +83 18.02.07 12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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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011. 태초 +64 18.02.06 13 0 10쪽
11 010. 끝과 시작 +98 18.02.05 15 0 11쪽
10 009. 세상의 끝 +72 18.02.04 18 0 9쪽
9 008. 뇌천존 +48 18.02.03 18 0 9쪽
8 007. 루시 +48 18.02.01 18 0 10쪽
7 006. 탈각(脫殼) +54 18.01.31 15 0 9쪽
6 005. 신의 언어 +57 18.01.30 15 0 10쪽
5 004. 굼뜬 신 +58 18.01.30 16 0 9쪽
4 003. 이 세상의 끝을 보려고 해 +38 18.01.29 21 0 11쪽
3 002. 영구정지 +64 18.01.28 17 0 13쪽
2 001. 강태산 +34 18.01.28 24 0 9쪽
1 프롤로그 +105 18.01.28 19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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