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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 혼자 영구정지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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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온후
작품등록일 :
2018.01.27 03:16
최근연재일 :
2018.02.17 20:1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169,327
추천수 :
33,313
글자수 :
115,328

작성
18.02.08 00:00
조회
43,063
추천
1,400
글자
9쪽

014. 순례자

DUMMY

셀 수 없이 많이 보이는 ‘권유’들. 여태까지 받아본 적 없는 신들의 관심에 강태산은 미간을 좁혔다.

그들은 모두가 호기심을 드러내며, 자신의 사도가 될 것을 제안했다. 평상시였으면 이러한 관심의 집중에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환호 가득찬 비명을 내질렀을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신들의 축복을 받아야만 영구정지 상태를 해제하고 지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사 붙여넣기 한 것 같은 이 한결같은 무성의함은 무어란 말인가. 그나마 불굴의 신은 감탄이라도 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차이를 드러냈다지만······ 그들의 언어가 왜 이 시점에서 닿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름을 밝힌 신이 없다.’


참 웃기는 일이었다.

사도(使徒)란 신성한 일을 위해 힘쓰는 사람을 말한다. 신적인 존재에게 있어선 제자와도 같은 의미다. 스승이 제자를 들이는데 신상공개를 꺼려한다? 이처럼 수상쩍기 그지없는 제안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굼뜬 신과 별걸음의 신은 내게 사도가 되라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들이 침묵하고 있었다. 굼뜬 신은 퀘스트를 직접 전달할 정도로 강태산의 행보에 관심이 많았고, 별걸음의 신은 자신의 권능 중 하나를 알려주기까지 하며 강태산의 성장을 도왔다. 그러나 사도라는 단어 자체를 그들은 꺼낸 적이 없다.

그것은 이 시점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왜?

그들과 다른 신들의 사이에 대체 무슨 차이점이 있는 걸까?

그리고 그 둘은 왜 자신을 그저 ‘지켜보고만’있는 것일까.

강태산은 주변을 둘러봤다.

산송장들은 이제 손으로 샐 수 있을 수준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도달한 멸망한 세계의 인간은 극소수란 말이었다. 또한 그들 대부분이 얽히고설키며 부딪힌 듯 서로가 서로의 심장에 무기를 꽂아 넣고 있었다.


‘이곳은······ 지옥이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산송장들의 세상. 서로가 정상에 오르는 걸 방해하며 발목을 잡는 아비규환의 세상. 그리하여 결국 모든 이가 자신을 잃어버린 그런 세상.

이곳에 오른 자아 중 오로지 강태산만이 스스로를 잃지 않고 있었다. 마의 바다에서 영혼의 그릇을 넓히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허나 어쩌면, 이러한 ‘현상’은 강태산에게만 주어진 게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이곳까지 올랐던 모든 사람들은 자신과 같은 ‘제안’을 받아온 게 아니었을지. 만약 그렇다면 닫힌 세계에서 열려있는 유일한 탈출구를 향해 사람들은 너도나도 손을 뻗었을 터였다.

정상에 오르면 뭐가 있기에 신들은 이처럼 성의 없는 제안을 남발하는 걸까. 순간 산의 아래에서 만났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자칭 신. 멸망한 세계를 떠도는 방랑자.

그는 분명히 말했다.


‘너희가 순례자라면 정상에 올랐을 때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으리라······.’


순례자!

말 그대로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다. 그렇다는 건 산의 정상에 아무도 보지 못한 ‘성지’가 있다는 뜻이었다. 아니면 이 산 자체가 순례자만 오르는 게 허락된 장소일 수도 있고.

그리고 그러한 성지와 순례자의 굴레는, 보통 신의 입김이 닿아있는 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니 크게 두 가지의 경우로 생각할 수 있었다.

신들의 제안은 강태산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 성지에 도달할 인간을 사도로 두며 무언가의 이득을 취하려고 한다는 게 첫 번째 가설이었고,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힘’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그 중심은 산을 오르는 인간이 아니었다.

결정적으로······ 강태산은 계속해서 굼뜬 신과 별걸음의 신이 이와 같은 제안을 해오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확실한 건, 적어도 그 둘은 강태산을 ‘이득을 취하기 위한 대상’이 아니라 ‘시련을 깨는 도전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모든 신들이 산을 오르는 인간을 지지했다면······ 이러한 지옥은 펼쳐지지 않았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깎아내리는 아수라장. 방해되는 모든 이들의 심장에 창을 꽂고 검을 박는 미친 세계가 되도록 내버려뒀을 리 없다.

도리어 싸움을 부추긴 건 아닐는지.

그것만으로도 차이점은 명확했다.

강태산은 결정을 내렸다.


“거절하겠습니다.”


동시에.


<불굴의 신이 당신의 선택에 아쉬움을 느낍니다.>

<죽은 꿈의 신이 당신의 선택에 불쾌함을 비춥니다.>

<오래된 밤의 신이 당신의 선택을 비웃습니다.>

······.


조금씩 다르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들 대부분은 오만하고 콧대 높은 신이었다. 자신의 제안을 거절한 강태산을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쩌면, 이 선택이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축복’을 받을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올리는 편이, 강태산이 산을 오르고 지구로 돌아가는 가장 빠른 방법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강태산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자신의 선택이 옳다고 믿었다.


<굼뜬 신이 흐뭇하게 웃습니다.>

<별걸음의 신이 당신의 선택을 지지합니다.>


그제야 나타난 그들.

기다리고 있었다.

강태산은 피식 웃었다.


‘그러면 축복 좀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말로 내뱉진 않았다. 지금은 저 둘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다는 점만 봐도 충분했다. 왠지 그가 한 선택을 지탱해주는 것만 같아서. 옳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많은 위안이 되었다.

강태산은 위를 올려보았다.

그럼에도, 산은 끝이 없었다. 마의 바다에서 길을 만들어주던 성운과 성좌는 방황하며 어그러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강철 같은 의지에 끝내 틈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 ‘틈’이 무엇인지, 강태산은 잘 알고 있었다.


‘내려가자.’


강태산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힘들게 올라온 산을. 샐 수 없이 많은 시간 공을 들여 마침내 여기까지 왔건만, 그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내려가는 길을 올라가는 길보다 더 힘들었다. 한 번 놓쳤기 때문인지 산송장들은 더욱 집요하게 그를 방해하려고 들었다. 진정한 그들의 의지는 아니겠으나, 계속해서 그래왔기에 3억 년이란 시간 동안 굳어버린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일 테다.

하지만 강태산의 발걸음엔 미련이 없었다.

상처가 터지고, 심장이 베이고, 뼈가 파이며 신체가 너덜대도, 그는 자신의 미련을 털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 한없이 가벼워졌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너······.”


한 여자가 있었다.

소녀 같기도 했다.

왜 돌아왔냐는 듯.

포기한 것이냐는 듯 자책하며 물어보는 눈빛으로,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업히십시오.”


강태산은 그런 그녀를 억지로 등에 업었다.

이 아비규환의 지옥에서 유일하게 그를 응원해준 여자. 포기하지 말라며, 너만을 포기하지 말아달라며 그녀는 소망했다.

모두가 남을 떨어트리려 할 때, 오로지 그녀만은 순수한 마음에서 건승을 바랐다.

강태산은 계속 그녀가 마음에 걸렸다.

3억 년간 자아를 지켜온 그녀가 그 오랜 시간 동안 무슨 마음으로 산에 오르는 자들을 바라봤을지. 모두가 싸우고 포기할 때 뒤에서 바라만 봐야했던 그녀의 심정을 강태산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녀야말로, ‘정상’을 볼 자격이 있다.

그녀야말로, 진정한 순례자였다.


“나를 업고선 절대로 정상에 오를 수 없어.”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입니다.”

“네 몰골을 봐. 자기 몸 건사하기도 힘든 상태로 나를 챙기겠다고?”

“제 상태는 제가 잘 압니다.”

“고집부리지마. 남을 챙기며 올라간 사람은 한 명도 없어.”


강태산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 아가씨 거 참 말 많네.”

“뭐······?”

“내 갈 길은 내가 정해. 실패해도 내가 하는 거야. 그러니 아가씨는 얌전히 공주님처럼 등에 업혀나 있으면 돼.”

“고집불통······!”

“딸한테 많이 듣던 말이군.”


강태산은 여자를 업은 채 산을 올랐다.

이름도, 출신도, 아무 것도 모르지만, 강태산은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는 항상 말했다.


“힘들면 나를 놓고 가. 원망하지 않을 테니까. 나는 네가 정상에 오를 수 있기를 바라.”


강태산은 못 들은 체 했다.

산송장들의 공격을 피하기가 더 어려워졌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런 건 고통 축에도 들지 않았다. 진정한 고통은 보고도 못 본 척 하는 것이다. 외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피하지 않기로 했다.

강태산은 고개를 들었다.


정상이, 가까워져간다.


작가의말

tdchy님, n9950_play0322님 후원 감사합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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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3. 굼뜬 신의 권능 +122 18.02.16 3 0 10쪽
23 022. 천계상점 +114 18.02.15 3 0 12쪽
22 021. 곰돌이 탈 +157 18.02.14 7 0 11쪽
21 020. 상태창 +436 18.02.13 6 0 14쪽
20 019. 방송국 +158 18.02.12 6 0 14쪽
19 018. 강선희 +193 18.02.11 8 0 14쪽
18 017. 지구로 +92 18.02.10 9 0 12쪽
17 016. 신살자 +98 18.02.10 12 0 9쪽
16 015. 검의 노래 +69 18.02.09 12 0 9쪽
» 014. 순례자 +84 18.02.08 13 0 9쪽
14 013. 신의 사랑을 받는 남자 +83 18.02.07 13 0 11쪽
13 012. 알카로스 +190 18.02.06 15 0 12쪽
12 011. 태초 +64 18.02.06 14 0 10쪽
11 010. 끝과 시작 +98 18.02.05 16 0 11쪽
10 009. 세상의 끝 +72 18.02.04 19 0 9쪽
9 008. 뇌천존 +48 18.02.03 19 0 9쪽
8 007. 루시 +48 18.02.01 19 0 10쪽
7 006. 탈각(脫殼) +54 18.01.31 16 0 9쪽
6 005. 신의 언어 +57 18.01.30 15 0 10쪽
5 004. 굼뜬 신 +58 18.01.30 17 0 9쪽
4 003. 이 세상의 끝을 보려고 해 +38 18.01.29 22 0 11쪽
3 002. 영구정지 +64 18.01.28 18 0 13쪽
2 001. 강태산 +34 18.01.28 25 0 9쪽
1 프롤로그 +105 18.01.28 21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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