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퀵바


표지

독점 나 혼자 영구정지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새글

연재 주기
온후
작품등록일 :
2018.01.27 03:16
최근연재일 :
2018.02.17 20:1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169,136
추천수 :
33,303
글자수 :
115,328

작성
18.01.31 23:55
조회
49,349
추천
1,153
글자
9쪽

006. 탈각(脫殼)

DUMMY

한입 베어 먹으려던 강태산이 루시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 멈칫했다.


“왜 그래?”

[지구의 인간이 이곳의 음식을 먹으면 벌을 받아요!]


루시의 표정엔 진지함만이 가득했다.

벌을 받는다니. 강태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반짝반짝 광이 나는 사과를 쳐다봤다. 150년 만에 만나는 음식을 먹기도 전에 제제 당했다. 그 이유나 제대로 알고 싶었다.


“이미 시간과 공간의 방에서 밥을 먹었던 것 같은데.”

[실재가 아닌 단순한 상상이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사과 좀 먹는다고 벌을 받는다고?”

[그 사과는 평범한 사과가 아닙니다. *****에요.]

“뭐?”


루시의 목소리 중 한 부분이 억지로 잘라낸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루시가 반복해서 말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현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둘 다 이상함을 느끼곤 시선을 하늘로 옮겼다. 사과를 던져준 저 방만한 신이 무언가 수작을 부린 게 분명했다.


‘굼뜬 신이 개입했구나.’


아마도 사과의 정체를 알려주고 싶지 않은 거겠지.

루시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나머지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에 생명체가 없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요. 그대는 벌을 받기 위해 이 장소에 온 것이 아니니까요.]

“그 벌이라는 게 구체적으로 뭐야?”

[이곳의 주민이 됩니다.]

“전혀 벌 같지도 않은 벌이네.”


강태산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것만 들어선 그다지 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신들이 주관하는 세상의 시민이 된다는 건 천사나 그 비슷한 존재가 된다는 뜻 아닌가?

하지만 이번에도 저승사자님의 견해는 다른 것 같았다.


[주민이 되면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 돼요. 결국 인간인 이상 망각을 하게 될 것이고 이 세상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지게 될 거예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절대로 아니 될 말이었다. 150년을 버텨온 건 오로지 지구로 돌아가기 위함이었다. 신과의 싸움 끝에 승리하여 딸 선희의 얼굴을 보겠다는 집념만으로 버텨왔다. 아예 돌아갈 수 없게 된다면 강태산은 처음으로 절망이란 진실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시 이건 굼뜬 신께서 보낸 ‘시험’이 아닐까요?]

“사과 하나 안 먹는 게 시험거리가 되나?”

[배 안 고프세요?]

“에이, 배고프다고 말 한 건 그냥 한 거지. 150년 동안 내가 굶주려하는 모습·····.”


꼬르르르르르르륵!!

말이 끝난 찰나 배에서 천둥이 쳤다.


“·····.”


150년 만에 강태산은 처음으로 강렬한 허기짐을 느꼈다. 사과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고 왜인지 향기로운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만 같았다. 꿀을 따는 벌처럼 본능적으로 강태산은 사과를 들어 천천히 입으로 우겨넣으려고 했다.


[멈추세요!]

“아, 깜짝이야.”


루시의 따끔한 목소리에 강태산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지? 어느새 사과는 입 바로 앞까지 도달해있었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본능이 몸을 지배한 것이다.

150년 만에 처음 접하는 음식을 위장은 강렬하게 갈구하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겪는 수준의 허기짐에 강태산은 깊은 혼란을 느꼈다. 머리는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가슴은 까짓 거 먹어버리자고 유혹을 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이 냄새. 사과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를 참을 수가 없다. 페로몬에 장악당한 것처럼 신경계통 전반이 마비되며 오로지 사과의 향취만을 쫓았다. 눈도 손도 사과에서 멀어질 수가 없었다. 던져버리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몸이 경직되며 움직이지 않았다.


“돌겠네.”


결국 강태산은 한 마디를 내뱉었다. 돌아버리겠다. 사전 그대로의 의미였다. 살벌한 난이도에 신의 시험이라는 게 이해가 되었다. 애당초 굼뜬 신은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을 내려준 걸까? 무슨 의미가 있어서?

이쯤하면 나타나야 할 신의 언어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굼뜬 신은 사과 하나를 던져주고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즐기며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호기심을 느꼈대서 좋게 봤지만 그다지 성격이 유한 신은 아닌 듯싶었다.


[********!]


머지않아 루시의 말도 들리지 않게 됐다. 그녀는 사력을 다해 강태산을 말리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유혹을 막아주는 방패가 사라져버린 셈이다.

먹고 싶다. 미치도록 먹고 싶다!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입 전체가 침으로 범벅이 됐다. 실핏줄이 터진 눈에선 피가 흘러내렸고 사과를 쥔 양 손에선 핏줄이 터질 듯 팽창했다. 전신에 닭살이 돋으며 모든 머리가 쭈뼛거렸다. 하지만 강태산은 인내하고 또 인내했다. 범인을 벗어난 인내심이 없었다면 150년간 주구장창 헤엄만 치지는 못했으리라.

시간이 멈춰버린 것만 같았다. 실제로 강태산은 아무런 생각도 안 하기로 하였다. 눈을 감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그 스스로 올라버렸다. 그간 쌓아온 영혼과 정신의 격이 처음으로 그 기지를 발휘한 것이다.

그래도 유혹은 계속됐다. 먹어라. 한 입만 베어먹어라. 그러면 너의 그 허기도 단번에 사라질 것이다. 사과에서 갑자기 입이 생기더니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마저도 지워내며 강태산은 모든 걸 초탈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얼마나 시간이 지난 걸까?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끝에 강태산이 눈을 떴다.


“허억, 허억·····!”


무념에서 깨어난 강태산이 사과를 바다 멀리 집어던졌다.


“이런 개! 좆같은!”


초탈이니 무아의 경지이니 하는 것과 상당히 거리가 먼 매우 인간적인 욕설과 함께, 강태산이 바다 깊숙이 몸을 담갔다. 그제야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굼뜬 신이 당신의 초인적인 인내심에 감탄합니다.>

<굼뜬 신이 나쁜 의도는 없었다고 말합니다.>

<굼뜬 신이 “그래도 미안하니까·····.”라고 말하며 선물을 줍니다.>


루시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괘, 괜찮으세요?]

“괜찮은 걸로 보이면 다행이고.”

[전혀 안 괜찮아 보여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루시가 울음기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10년 동안 석상처럼 가만히 계셨어요. 주, 죽은 줄 알았어요.]

“뭐? 10년이 지났어?”


강태산이 쇳소리를 냈다. 어이가 없었다. 무념무상으로 버텨보긴 했지만 그 사이 10년이 지났다는 게 쉬이 믿기지는 않았다.

아무리 시간의 개념이 모호해도 10년이면 분명히 긴 시간이다. 그 시간 동안 안절부절 못하며 기다리고 있었을 루시를 상상하니 마음이 찡해졌다.

아니, 잠깐. 그러면 10년 만에 깨어나서 처음 꺼낸 말이 이런 개 좆같은 이란 말이었단 것인가? 강태산은 비명을 삼켰다. 마음 졸이며 기다렸을 루시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영혼의 탈각(脫殼)과 함께 그대가 돌아왔어요. 정말, 정말 다행이에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번데기가 나비가 된 거죠. 그대가 가진 영혼의 격만큼은 이제 9급 천사와 대등해요.]


천사는 아홉 개의 계급이 있었다. 9급 천사라면 말단 중에서도 말단이지만 인간이 그만한 격을 쌓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탈각의 과정을 마친 강태산은 죽으면 천사가 될 가능성이 생겼다. 희박하긴 하지만 죽으면 영혼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영적 존재가 되어 다시 루시와 재회할 수도 있는 것이다. 루시는 내심 기쁨과 번뇌를 번갈아가며 느꼈다. 강태산이 천사가 되어 그녀와 영원을 함께 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그러면서도 강태산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이중성에.

하지만 그 대단함을 모르는 강태산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천사가 될 생각은 없는데. 그나저나····· 그 사과는 대체 뭐였던 거지?”


강태산이 천사가 될 생각이 없다고 말하자 루시가 살짝 실망한 말투로 말했다.


[선악과. 최초의 인간들이 저지른 죄의 이름이에요.]

“아담과 이브가 먹은 거?”

[예.]


맙소사. 강태산은 이마를 때렸다. 선악과를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최초의 인간이라 불리는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의 유혹에 져서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지금 자신은 아담과 이브도 참아내지 못했던 유혹을 이겨낸 것이다.


[그런데 그건 뭐죠?]

“뭐가?”

[등에 돋아난 거요.]


루시가 묻자 강태산은 손을 뻗어 등을 만졌다. 곧 등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이 있었다.

짧고 부드러운 것. 그러면서 빳빳하고 거센 것. 한 개가 아닌 다수였다.

없던 게 생겼다.

강태산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뭘까?


작가의말

나 혼자 영구정지는 저녁 11시 55분에 연재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 혼자 영구정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시간은 점심 12시입니다. +30 18.02.08 6 0 -
25 024. 정령창조 NEW +49 10시간 전 1 0 12쪽
24 023. 굼뜬 신의 권능 +122 18.02.16 3 0 10쪽
23 022. 천계상점 +114 18.02.15 3 0 12쪽
22 021. 곰돌이 탈 +157 18.02.14 6 0 11쪽
21 020. 상태창 +436 18.02.13 5 0 14쪽
20 019. 방송국 +158 18.02.12 5 0 14쪽
19 018. 강선희 +193 18.02.11 7 0 14쪽
18 017. 지구로 +92 18.02.10 8 0 12쪽
17 016. 신살자 +98 18.02.10 12 0 9쪽
16 015. 검의 노래 +69 18.02.09 12 0 9쪽
15 014. 순례자 +84 18.02.08 12 0 9쪽
14 013. 신의 사랑을 받는 남자 +83 18.02.07 12 0 11쪽
13 012. 알카로스 +190 18.02.06 15 0 12쪽
12 011. 태초 +64 18.02.06 13 0 10쪽
11 010. 끝과 시작 +98 18.02.05 15 0 11쪽
10 009. 세상의 끝 +72 18.02.04 18 0 9쪽
9 008. 뇌천존 +48 18.02.03 18 0 9쪽
8 007. 루시 +48 18.02.01 18 0 10쪽
» 006. 탈각(脫殼) +54 18.01.31 16 0 9쪽
6 005. 신의 언어 +57 18.01.30 15 0 10쪽
5 004. 굼뜬 신 +58 18.01.30 16 0 9쪽
4 003. 이 세상의 끝을 보려고 해 +38 18.01.29 21 0 11쪽
3 002. 영구정지 +64 18.01.28 18 0 13쪽
2 001. 강태산 +34 18.01.28 25 0 9쪽
1 프롤로그 +105 18.01.28 19 0 1쪽

신고 사유를 적어주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고

'온후'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