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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 혼자 영구정지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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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온후
작품등록일 :
2018.01.27 03:16
최근연재일 :
2018.02.17 20:1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169,334
추천수 :
33,313
글자수 :
115,328

작성
18.01.30 23:55
조회
50,910
추천
1,217
글자
10쪽

005. 신의 언어

DUMMY

······ 굼뜬 신?

강태산은 자신의 눈앞에 떠오른 글자들을 바라보다가 미간을 좁혔다. 이후 손을 휘휘 저어봤지만 나열 된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뭐하세요?]

“눈앞에 웬 글자가 보이는데.”

[제 눈엔 아무 것도 안 보여요.]


아무래도 루시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글자들이 안 보이는 모양이었다. 순간 환각인가 생각했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또렷했다. 그러나 강태산을 바라보는 루시의 눈빛엔 측은지심이 가득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를 바라보는 민간인의 시선이라 강태산은 자신이 본 것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말해보았다.


“굼뜬 신이 당신에게 호기심을 보입니다.”

[예?]

“그렇게 쓰여 있네. 뭐야, 이건? 굼뜬 신은 누구고?”


신. God. 창조주. 그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다. 여태껏 질리도록 저주하고 기다렸던 존재가 바로 신이었으니까. 그런데 난데없이 글자만 덩그러니 나타났으니 강태산의 입장에선 이게 무엇인고 싶었다.

장난처럼 느껴지는 어휘에 약간 짜증이 치솟은 것도 사실이었다.

강태산의 말을 들은 루시가 눈물을 닦아내며 의외라는 듯 되물었다.


[잠깐. 신의 언어가 보인다는 말인가요?]

“신의 언어?”

[시스템의 언어라면 제가 볼 수 있었겠죠. 하지만 제게 보이지 않는 언어라면 그밖엔 없어요.]


강태산은 조금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굼뜬 신이라는 게 혹시 내가 오매불망 기다리는 그 신은 아니겠지?”


100년 째 영구정지 상태를 안 풀어주는 걸 보면, 미치도록 굼뜨긴 했으니까. 허나 루시는 고개를 저어보였다.


[이름을 숨긴 신이신 것 같네요.]

“신이 또 있어?”

[신이란 하나이되 여럿입니다. 개체가 모여 주체가 되고, 주체가 모여 개체가 되죠. 각자가 맡은 역할에 따라 의견을 나누고 통합하며 세계의 질서를 이끌어내세요.]

“어려운 말은 됐고. 그럼 이 굼뜬 신이라는 존재도 내 영구정지 상태를 풀 수 있는 건가?”

[그대의 영구정지는 주신께서 걸어놓은 제약이에요. 다수의 신들께서 영구정지 상태가 풀리길 동의한다면 모를까······.]


주신이라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영구정지 상태를 풀어줬을 거라고 루시는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강태산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 신들에게 건의할 수 있다면 진즉에 했겠지?”

[예.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조차 알 수가 없어요. 몇 번 시도해봤지만 워낙에 자유로운 분들인지라······ 미안해요.]

“계속 사과하는 것도 병이다. 네 잘못이 아닌 일에는 사과하지 마.”


강태산은 루시에게 따끔하게 질책했다. 처음에는 표정변화 없는 냉혈한인 줄 알았는데 알면 알수록 루시는 마음이 굉장히 어린 저승사자였다. 남의 일에도 눈물을 보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심성이 착하다는 증거다. 만약 루시와 같은 이들만이 지구에 가득했다면 강태산은 형사가 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강태산의 질책을 들은 루시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무덤덤했다.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그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인간들이 말하는 ‘아버지’란 존재가 있었다면 그와 같은 느낌이었을까. 질책의 말투에도 한없이 따듯하고 정이 넘쳤다.


“그런데 이상하네. 굼뜬 신이 왜 나한테 호기심을 느꼈지?”

[일전에 말했듯이 이곳은 신의 영역이에요. 신들의 정신이 조금씩 이어진 장소죠. 이 바다를 백 년 가까이 헤엄만 치고 있었으니, 신들 중 한 분이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말을 하면서도 루시는 자신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신이 관심을 갖는 인간이라니. 그것만으로도 말이 안 되건만 직접 ‘신의 언어’를 사용해 강태산에게 관심을 표한 것이다.

내가 너한테 호기심을 가졌으니, 더 잘 해보라는 듯. 이 역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수천 년 동안에는 말이다.


“그게 끝이야?”


하지만 강태산은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르는 것 같았다.

루시가 열변을 토했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에요! 비록 이름을 숨기시긴 했지만 그대의 행동에 따라서 이 호기심은 축복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요. 그, 그러면, 그대가 죽지 않을 길이 열릴지도 몰라요!]

“내가 죽지 않는다고? 난 살아있는데?”

[아뇨! 그대에게 내정된 ‘죽음’ 말이에요. 차유진이 쏜 총에 맞은 순간 유보시켜둔 죽음을, 신의 축복이라는 이름으로 견뎌낼 수 있을 가능성이 분명히 있어요!]

“워워. 알았어. 진정해.”


강태산이 양 손을 뻗으며 루시를 말렸다. 루시는 흥분하고 있었다. 지난 100년 동안 그녀가 이토록 흥분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당사자인 강태산은 무덤덤한데 루시 혼자 화를 내니 그림이 이상했다. 이내 자신의 추태를 깨달은 루시가 눈을 깜빡이며 볼을 붉게 물들였다.


[······ 하여간 좋은 일이에요.]

“그래. 확실히 좋은 일인 것 같네.”


그래도 강태산은 나름대로 놀라고 있었다. 처음 지구의 이야기를 할 때를 빼고 루시는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은연중 ‘아, 돌아가면 정말 죽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절대적 명제이니 규칙이니 하면서 확신했으니까.

헌데 그 죽음을 피해갈 수 있다는 거다. 할 수만 있다면 강태산도 적극적으로 그놈의 호기심을 축복으로 승화시키고 싶었다.

게다가 강태산이 마의 바다에서 느꼈던 ‘위대한 정신’이 바로 신이었던 것 같았다. 어쩐지 범접할 수 없는 신묘함이 느껴지더라니. 그중 하나가 굼뜬 신인 건 아닐지.


“이름은 왜 숨긴 거야?”

[아무래도 ‘반대파’ 같아요.]

“반대파?”

[주신께서 짜신 ‘전승자 시스템’을 인류에게 부여하는 걸 반대한 신들이 꽤 계세요. 어비스가 열린 건 그간 인류가 수많은 균열을 일으킨 결과이니, 멸망 역시 정해진 수순 아니냐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신 분들이죠.]

“그 부정적인 신 중 하나가 나한테 호기심을 느꼈다?”

[예. 그리고 지구의 인간은 신의 축복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 없어요. 하지만, 이곳은 신의 영역! 유일하게 그대만이 신과 교류하는 게 가능해요!]

“울다가 웃으면 엉덩이에 뭐 난다던데.”

[아······.]

“보기 좋다는 말이야. 덕분에 머리가 좀 맑아진 것 같아.”


강태산이 여유롭게 웃었다. 솔직히 방금 전까진 그래서 어쩌라는 거지하는 느낌이었지만 루시가 대신해서 텐션을 올려준 덕분에 뭘 해야 할지가 뚜렷해졌다.


“내가 한 거라곤 수영밖에 없지만, 그걸 보고 호기심을 느꼈으니 내가 정말 이 세계의 끝을 보기를 바라는 신이겠지. 그러면······ 봐보자고.”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굼뜬 신이 당신의 의지에 갈채를 보냅니다.>


다시금 떠오른 글자.

강태산이 허, 소리와 함께 말했다.


“이 신은 피드백이 좀 빠른데?”


영구정지를 건 주신과는 다르게 말이다.

루시가 물었다.


[또 신의 언어를 받으셨나요?]

“응. 내 의지를 응원하겠다네. 그런데 신의 100년은 내 1초이니 하지 않았어?”


루시가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자신이 흥미를 가진 일에 대해선 누구보다 일처리를 빠르게 하는 게 그분들이라서요······.]

“젠장. 내 영구정지는 흥미대상이 아니라는 거구나.”


적폐가 여기 있었다.

주신. 잘못을 저지르고 흥미가 없어서 방관하고 있다는 뜻 아닌가!


<굼뜬 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일부분 동의합니다.>


스스로의 방만함을 인정하는 신이라니.

잘나셨습니다, 정말.


* * *


그 뒤로도 강태산의 일과는 변한 게 없었다.

주구장창 헤엄치며 마의 바다를 건너는 것.

100년을 넘어 110년, 120년······ 쉬지 않고 헤엄쳤다. 하지만 마의 바다는 여전히 무한하게 펼쳐져 있었다. 피로함을 느끼고 포기할 법도 하건만 강태산은 앓는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자신이 해야할 일은 명확했으니까.

희망이, 생겼으니까.

오히려 전보다 더 열심히 바다를 갈랐다.

그리고 150년이 지났을 때, 무려 50년 만에 ‘신의 언어’가 도착했다.


<굼뜬 신이 배가 안 고프냐고 묻습니다.>


‘왔구나.’


50년 만에 보는 허공의 글자였다. 강태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세계에 떨어진 뒤로 허기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먹은 게 없는데도 신체는 변화했고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증을 느낄 때는 있었다. 루시는 ‘의지의 힘’이라고만 말했는데 그다지 이해가 가는 답은 아니었다.

그런데 배 안 고프냐고?


“배 많이 고픕니다.”


왠지 배가 고프다고 답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그렇게 말하자,


<굼뜬 신이 그럴 줄 알았다며 먹을 것을 보냅니다.>


툭!

과일 하나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반짝반짝 광이 나는 새빨간 사과였다.


“보내줄 거면 소고기 같은 거나 보내주시지.”


김영란법이 없는 세상이니 이왕지사 받을 거면 사과 말고 소고기가 받고 싶은 강태산이었다.

물론 이 사과 하나만 해도 감지덕지이긴 하였다.

이 세상엔 생명체가 없다. 육류고 채소고 아무 것도 없었다. 150년 동안 강태산은 음식물을 전혀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무슨 음식이 어떤 맛이었는지도 다 잊어버렸다.

그러니 내심 감사히 받았다.

강태산이 사과를 잡고 입을 벌리자, 루시가 다급히 외쳤다.


[자, 잠깐······!]


작가의말

한동안 연재시간을 저녁 11시 55분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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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023. 굼뜬 신의 권능 +122 18.02.16 3 0 10쪽
23 022. 천계상점 +114 18.02.15 3 0 12쪽
22 021. 곰돌이 탈 +157 18.02.14 7 0 11쪽
21 020. 상태창 +436 18.02.13 6 0 14쪽
20 019. 방송국 +158 18.02.12 6 0 14쪽
19 018. 강선희 +193 18.02.11 8 0 14쪽
18 017. 지구로 +92 18.02.10 9 0 12쪽
17 016. 신살자 +98 18.02.10 12 0 9쪽
16 015. 검의 노래 +69 18.02.09 12 0 9쪽
15 014. 순례자 +84 18.02.08 13 0 9쪽
14 013. 신의 사랑을 받는 남자 +83 18.02.07 13 0 11쪽
13 012. 알카로스 +190 18.02.06 15 0 12쪽
12 011. 태초 +64 18.02.06 14 0 10쪽
11 010. 끝과 시작 +98 18.02.05 16 0 11쪽
10 009. 세상의 끝 +72 18.02.04 19 0 9쪽
9 008. 뇌천존 +48 18.02.03 19 0 9쪽
8 007. 루시 +48 18.02.01 19 0 10쪽
7 006. 탈각(脫殼) +54 18.01.31 16 0 9쪽
» 005. 신의 언어 +57 18.01.30 16 0 10쪽
5 004. 굼뜬 신 +58 18.01.30 17 0 9쪽
4 003. 이 세상의 끝을 보려고 해 +38 18.01.29 22 0 11쪽
3 002. 영구정지 +64 18.01.28 18 0 13쪽
2 001. 강태산 +34 18.01.28 25 0 9쪽
1 프롤로그 +105 18.01.28 21 0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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