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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 혼자 영구정지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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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후
작품등록일 :
2018.01.27 03:16
최근연재일 :
2018.02.17 20:13
연재수 :
2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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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9,196
추천수 :
33,308
글자수 :
115,328

작성
18.01.29 11:10
조회
5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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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7
글자
11쪽

003. 이 세상의 끝을 보려고 해

DUMMY

쉐에에에엑-!

빠아아악!

강태산이 내지른 주먹에 샌드백이 허공을 날았다.

폼 자체는 어지간한 프로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고 파괴력 역시 5년 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 사이 몸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개구리 배처럼 튀어나왔던 살들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신 살이 즐비했던 자리를 근육이 차지했다.


“이것도 슬슬 재미가 없네.”


강태산은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처음에야 몸 만드는 재미라도 있었지만 그것도 1, 2년이었다. 3년이 지난 뒤에는 그냥 의무적으로 운동을 해왔다. 5년 차인 지금에 와선 슬슬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처음엔 돌아가면 기다리는 가족의 모습에 감회에 젖어 행복을 느꼈지만 결국 기억으로 실체화 된 가짜일 뿐이라는 걸 깨닫고는 모든 게 부질없음을 느끼는 중이었다.


[이제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나요?]


깨달음을 얻자 루시가 찾아왔다.

하지만 강태산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멀었어.”

[이곳에 오래 있을수록 그대가 느낄 감정은 허망함과 후회뿐이에요. 자신을 되돌아볼 시간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나요?]

“환상에 의지하면 안 된다는 건 확실히 알았어. 그럴수록 의지가 약해지더군. 이제는 그냥 온전히 혼자 버텨보려 해.”


5년의 시간 동안 강태산과 루시는 약간 가까워진 상태였다. 그래봤자 강태산이 일방적으로 말을 튼 것에 불과했지만 가끔 이렇게 대화도 걸어줄 사이는 되었다.

그 대화라는 것도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것이 주류였지만.

사무적으로만 대하던 처음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나는 진짜가 보고 싶다.’


강태산은 표정을 굳혔다.

지구로 돌아가 딸을 만나야 한다. 아내는 현실에 없지만 딸은 아직 남아있었다. 결코 혼자 두지 않겠노라고 약속했는데,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환상에 의지하면 계속해서 후회만 쌓인다.

그래서 강태산은 상상속의 세상을 지웠다.

이윽고 아내가, 딸이 지워졌다. 주변 배경이 사라졌다.

강태산은 완전한 혼자가 되었다.

그러자 처음 그가 눈을 떴던 동굴이 나타났다.


“이 동굴 너머엔 뭐가 있는 거지?”

[이곳을 나가는 건 그다지 추천하지 않아요.]

“상상 속의 세계에서 혼자 썩는 것보단 나가는 게 나아.”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몸이 저질이었을 때에 비해 지금은 기초체력도 훌륭히 붙었다. 정말로 세계일주를 해도 부족함이 없을 수준이었다.

루시는 말렸지만 강태산은 막무가내였다. 강태산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이 공간에 계속 있으면 과거에 묶일 것만 같았다.


‘그래, 나가자.’


강태산은 동굴을 벗어났다.


* * *


동굴을 벗어나 무작정 걸었다. 하루에 50km은 족히 걸은 것 같다.

아무 것도 없는 평평한 대지. 44일을 내리 걷자 바다와 모레사장이 나왔다.


“여기도 내 상상이 실체화하는 곳인가?”

[그대의 가장 뚜렷한 추억이 담긴 마지막 공간이에요.]


해운대. 비니키를 걸친 여자와 물놀이를 하는 애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광활한 해수욕장과 저 멀리서 보이는 바다만큼은 기억과 다를 게 없었다.

가장 뚜렷한 추억이라. 강태산은 피식 웃었다.


“이곳도 오랜만이구나.”

[해운대로군요.]

“해운대를 알아?”

[사람 많은 곳이라는 것 정도는 알아요.]


루시가 살짝 거리를 둔 채 옆에 앉았다.

강태산은 모레사장 위에 앉아 저물어가는 노을을 바라봤다.


“여기서 선희 엄마를 만났지.”

[아직 늦지 않았어요. 다시 돌아가도 돼요.]

“아니. 괜찮아.”


고개를 저은 강태산이 말을 이었다.


“떠오르는군. 결혼생활이 길지는 않았지만 여기서 첫눈에 반했지.”


루시가 의외라는 듯 강태산을 바라봤다. 솔직히 강태산은 결혼이란 단어와는 전혀 안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곰 같고 나쁘게 말하면 요령이 없다. 의리는 잘 알 것 같지만 사랑은 모를 것 같은 사람. 그게 강태산이었다.


[그분은 지구에 계시나요?]


여태껏 루시는 강태산의 개인사에 대해 전혀 묻지 않았다.

하지만 동굴을 벗어난 이후 루시는 조금 더 그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했다. 동굴은 시간과 공간의 방이자,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미련의 장소다. 그곳을 스스로 벗어났다는 건 어느 정도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뜻이었다.

강태산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없어. 암을 너무 늦게 발견했거든.”


약도 없다는 췌장암이었다. 선희를 낳고 건강이 악화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그렇게 매정히 가버렸다. 이후 강태산은 혼자서 딸을 길렀다.

강태산이 지평선 끝을 바라봤다. 혹시 안 좋은 기억을 건드린 건가 싶어서 루시가 사과했다.


[미안해요.]

“오래된 일인데 뭐.”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말해줄 수 있나요?]

“의외로 이런 건 궁금해 하네.”


사랑이야기는 궁금한 걸까.

피식 웃으며 강태산이 말을 이었다.


“지갑 훔치던 날치기범을 잡았지. 내 손을 꼭 붙잡으면서 고맙다고 하더군. 지갑에 잃어버리면 안 될 물건이 있었다나.”

[그게 뭐죠?]

“할머니 사진. 다른 건 다 잃어버려도 이건 잃어버리면 안 된다고 품에 꼭 안으면서 엉엉 우는데 그 모습에 반해버렸지. 그 자리에서 바로 결혼하자고 했어.”

[설마 그걸 받아드린 건가요?]

“설마. 벌레 쳐다보듯 날 쳐다보던 그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그래도 거절은 못하는 성격이라 처음엔 친구로 시작하자고 하더군. 뭐, 결혼까지 1년 걸렸으면 생각보다 빠르긴 했네.”

[후회하시나요?]

“결혼한 걸? 아니, 전혀.”


강태산은 루시의 물음을 즉시 부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무모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무모함 덕분에 강태산은 결혼을 하고 선희를 만났다. 그때의 그 선택을 결코 후회한 적이 없었다.

눈물과 술로 지새운 날이 적지는 않았지만 지금에 와선 그것도 추억이었다. 어쩌면 그러한 추억이 있기에 강태산은 더 강하게 스스로를 채찍질 할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만나고 싶지는 않나요? 선행을 많이 쌓아서 죽으면 잠시나마 만날 수 있을 텐데.]

“내가 죽으면 선희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아, 그게······.]


말실수였는지 루시가 당황했다.

루시가 당황하는 모습은 5년 동안 본 적이 없었다.

강태산은 피식 웃으며 손을 뻗어 저물어가는 태양을 쥐었다.


“죽더라도 내 딸이 결혼하는 건 보고 죽고 싶거든. 형사가 애를 얼마나 잘 키우겠냐고 구박도 많이 받았던 터라······ 돌아가서 내가 애를 이렇게 잘 키웠다고 자랑하려면 아무래도 구실 하나쯤은 필요하지 않겠어?”


루시는 안타깝다는 듯 강태산을 바라봤다.

그의 죽음은 이미 내정이 되어있었다. 그가 이 세계에서 모든 걸 놓은 뒤 현실로 돌아가면, 예정 된 죽음이 강태산을 덮칠 것이다.

생과 사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 세계의 법칙이었다. 다만, 실수로 인한 착오를 보상하고자 약간의 유예를 뒀을 뿐이었다. 조금이라도 이 세계에서 그가 가진 후회를 내려놓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법칙은 강태산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다.

그는 그의 딸이 결혼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었다.


“루시. 수영을 해볼까 해.”

[물에 닿는 거 별로 안 좋아하지 않았나요?]


말려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된 루시가 되물었다.

강태산은 지독한 맥주병이었다. 물에 들어가면 자석이라도 달린 것처럼 하염없이 밑으로만 추락했다. 어쩌면 물의 저주를 받는 인간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고진감래.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


강태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의미모를 말과 함께 바다로 뛰어들었다.


“꼬르르르륵!”


동시에 물에 빠진 강태산이 거품을 문 채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루시가 고개를 저었다.


[이상한 사람······.]


* * *


몇 번 해보고 포기할 줄 알았던 강태산의 수영연습은 장장 10년이 넘게 이어졌다. 처음에는 맥주병 그 자체였지만 1년이 지나지 않아 물을 극복한 그가 헤엄을 치며 바다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말도 안 돼!]


단순히 바다를 헤엄쳐 나아가는 것이라면 이렇게 놀랄 것도 없다.

하지만 이곳은 기억의 저편, ‘마의 바다’였다.


[인간이 어떻게 ‘마의 바다’를 넘나들 수 있는 거지?]


마의 바다.

시간과 공간의 방을 벗어난 이들을 기억 속에 가둬두기 위한 마지막 장치다. 시간 단위로 기후가 바뀌며 인간이 결코 버틸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하건만 강태산은 자기 앞마당처럼 마의 바다를 힘차게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물이라는 트라우마마저 극복하며 무려 10년 동안이나.

단 한 번도 자신의 미련으로, 지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이제 슬슬······ 죽음을 받아들이시는 게 어때요?]


이쯤 되자 루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태산은 결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어찌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미련을 전혀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결국 인간은 인간이었다. 망각을 하는 존재 말이다.


“아직 버틸 만 해.”

[세계가 변해가고 있다는 걸 느끼지 못하시나요?]

“최근 기후변화가 조금 더 심해지긴 했지.”

[미련을 던져버렸대도 결국 이곳은 기억의 공간. 새로운 기억이 없으니 그대의 세계는 마모되어만 가고 있어요. 이대로 시간이 더 지나면 그대는 그대가 ‘강태산’이었다는 것조차 잊게 될 거예요.]


소중히 여겼던 추억과 딸과의 기억도 사라져버릴 것이다. 루시는 처음으로 다급함을 느꼈다. 그가 15년이나 이 세계에서 버틸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접근하는 방법을 달리했을 터였다. 아무런 생명체도 없는 세계에서 1년만 버텨도 엄청난 것이건만······.

그만큼 강태산의 정신이 견고하다는 의미였다. 일반적인 범인의 수준을 넘어선 정신력은 루시마저 놀라게 만들었다. 오랜 세월 도를 닦은 선인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이 세계에서 15년을 버티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강태산도 조금 이상하다 생각하고는 있었다.


‘그냥 오래돼서 기억이 들쑥날쑥 한 걸 줄로만 알았는데.’


그 모든 게 마모되어가는 과정이었다니.

하지만 강태산은 어깨를 으쓱하며 몸을 돌렸다.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자신이 잊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무엇보다 아직 강태산의 모험은 끝나지 않았다.


“루시. 나는 이 세상의 끝을 보려고 해.”


강태산은 계속해서 마의 바다를 건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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