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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 혼자 영구정지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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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주기
온후
작품등록일 :
2018.01.27 03:16
최근연재일 :
2018.02.17 20:13
연재수 :
25 회
조회수 :
1,169,098
추천수 :
33,303
글자수 :
115,328

작성
18.01.28 11:10
조회
60,652
추천
1,337
글자
13쪽

002. 영구정지

DUMMY

[시간과 공간의 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강태산은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으스스 몸이 떨리며 오한이 들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보이는 것이라곤 돌덩이들뿐이었다.

아무래도 동굴 안에 있는 것 같았다.


‘살아있는 건가?’


가슴팍을 내려다보자 총을 맞은 상처자국이 그대로 있었다.

강태산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차유진이 쏜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대의 죽음은 잠시 ‘유보’되었습니다.]

“누구십니까?”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강태산이 주변을 휙휙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없건만 들려오는 이 목소리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보이지 않는 게 당연합니다. 저는 저승사자이니까요.]

“저승사자요?”

[그대가 스스로 죽음을 인정하게 되는 순간, 그대를 저승으로 인도할 저승사자입니다.]

“잠깐. 이해가 안 됩니다. 제 죽음이 유보되었다는 것도 그렇고. 여기는 저승이 아닌 겁니까?”

[말 그대로 그대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곳은 저승이 아닌 ‘시간과 공간의 방’입니다. 이해가 되셨나요?]


소녀에 가까운 얇은 음성.


‘내가 살아있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강태산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그 사실에만 주목했다.

강태산은 강력반 형사 일을 하며 언제든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에게 죽음이란 매일 떠오르는 태양처럼 항상 겪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살아있다는 소리를 듣자 희망이 샘솟았다.


[허나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면 그대는 죽습니다. 물론 돌아갈 수도 없겠지만요.]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본래는 차유진이 ‘영구정지’ 대상자였습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목소리가 들렸을 거예요. 기억 안 나시나요?]

“전승자 시스템 어쩌고······ 지구에서 강제퇴장 당했다는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강태산이 미간을 집었다.

지구에서 강제퇴장이라니. 환청이거나 이제 요단강 건너려고 하나보다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죽어가는 판국에 그런 소리를 듣는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저승사자의 견해는 다른 모양이었다.


[차유진은 인류에 거대한 해악을 끼칠 영혼이었습니다. 그래서 신께서 특별히 ‘영구정지’ 목록에 올리셨죠. 그런데 하필 그때, 그대가 나타난 겁니다.]

“잠깐. 그럼 제가 차유진 대신 지구에서 퇴장 당했다는 겁니까?”

[예. 안타깝지만······ 게임으로 치자면 대기실에서 강제퇴장 버튼을 누른 찰나, 그대가 그 자리에 올라와서 대신 퇴장이 되어 버린 거죠. 정말 기적 같은 타이밍이라고밖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강태산은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가뜩이나 차유진한테 총 맞고 죽은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이제는 놈 대신 땜빵을 왔단다. 게임에서 강제퇴장 당하면 다른 방 들어가면 그만이지만 지구에서 강제 퇴장 당하면 어디로 가야하나.


“단순한 실수라면 다시 돌아갈 수도 있겠군요.”


강태산은 입술이 마르는 걸 느꼈다. 저승사자가 직접 찾아온 걸 보면 행정의 실수이니 다시 원상복구를 시켜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일말의 기대가 생겼다.


[돌아가 봤자 죽는다니까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않습니까?”


저승사자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 가능은 할 거예요. 당장은 안 되겠지만.]

“당장은 안 된다니요?”

[이곳은 지구와는 궤를 달리하는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대는 ‘영구정지’ 상태죠. 신께서만이 그대의 영구정지 상태를 풀어주실 수 있어요.]

“그게 풀리면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이잖습니까.”


저승사자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답했다.


[신이란 영원을 사는 존재입니다. 그대의 100년은 신의 1초와도 같아요. 이 상태가 10년 뒤에 풀릴지, 100년 뒤에 풀릴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어요.]

“그럼 그 사이에 제가 늙어죽는다거나 하지는 않겠죠?”

[확실하진 않지만 이곳의 100년은 기껏해야 지구의 1개월에서 1년 사이일 거예요.]


강태산은 저승사자의 말을 짧게 정리했다.


1. 나는 아직 살아있다.

2. 이곳은 지구와 궤를 달리하는 시간과 공간의 방이다.

3.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돌아갈 수 있다.


좋다. 아주 좋다.

이 세 가지면 충분했다.

강태산이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까짓 거 기다리겠습니다.”

[그대를 이곳에 소환한 건 단순한 사죄의 의미에요. 이 영역은 죽음과 삶의 경계. 그대의 상상에 따라 모든 게 변하고 충족되는 장소입니다. 충분히 여가를 즐기시고,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라는 배려······.]

“안 죽은 사람을 왜 계속 죽입니까?”

[죽음이란 절대적 명제입니다. 지금은 그 죽음을 잠시 유보시켜놨을 뿐. 돌아가 ‘각성’한다 하더라도 피해갈 수 없어요.]


저승사자의 말은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어차피 죽을 거니 얌전히 죽음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강태산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릴 수 없었다.


‘선희야.’


집에서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꽃돼지. 그 아이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는 게 강태산이었다.

영구정지 당한 것도 실수이니 죽은 것 자체가 잘못 된 것일 수도 있었다. 강태산은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게 아니면 잘 믿지 않는 주의였다.

그래서 어깨를 으쓱하며 주제를 돌렸다.


“각성? 아, 그러고 보니 그 비슷한 말도 들은 것 같습니다.”

[어비스가 열리며 괴물들의 침략이 곧 시작될 거예요. 신께서는 어그러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시스템’을 짜셨어요. 시스템으로 인해 인류는 각성하며, 괴물에게 대항할 힘을 얻게 됩니다.]

“에일리언 같은 놈들이라도 쳐들어오는 겁니까?”

[괴물들은 그보다 훨씬 악랄하고 잔인합니다. 그것들을 안 보고 눈을 감을 수 있는 게 축복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3,547,776회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인류가 괄목 성장한다 해도 승률이 1할을 넘지 않았으니까요.]


듣다보니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제야 강태산의 머릿속에 콰드득 번개가 쳤다.


“저, 집에 딸아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성격이 착해서 평생 싸움이란 걸 모르고 살던 아이인데요.”

[염려 마세요. 그대가 몸을 날려 지켜준 최강이라는 사람, 영웅의 자질을 갖고 있더군요. 0.0001%에 해당하는 매우 우수한 잠재력을 보유했어요.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대의 딸을 지켜줄 거예요.]

“허, 그 어리바리가 말입니까?”

[예.]


오래살고 볼 일이었다. 틀림없이 단명할 상이라고 생각했건만 그놈이 영웅의 자질을 보유하고 있단다.


“이곳이 정말 제 상상대로 모든 게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것이죠?”

[부디 여가를 즐겨주시길. 그대가 만족할 때까지 하고 싶은 모든 걸 하시면 됩니다.]

“이런 짓 저런 짓 다 해도 된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흔쾌한 수락이었다.

강태산은 머릿속으로 자동차를 그렸다.

그러자 눈앞에 꿈에도 그리던 고가의 외제차가 나타났다.


“휘유!”


차에 탔다.


“음? 왜 안 움직이지?”


하지만 자동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안의 구조도 텅 비어있었다.


[어디까지나 그대가 알고 있는 ‘지식’ 선에서만 가능합니다.]


자동차를 움직이려면 그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형사였던 강태산에게 그런 전문지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번엔 배경을 떠올렸다.

그가 살던 집. 십년 넘게 살아온 집이라서 그런지 적어도 외형은 모두 똑같이 재현되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의 방 안에 있었다.

창가에 놓인 방울꽃, 침대 옆에 붙어있는 껌 딱지 하나까지.

그렇다면······.

‘죽은 아내도 볼 수 있는 걸까.’

강태산은 눈을 감고 강하게 머릿속에 기억을 그렸다.

“여보. 밥 먹고 출근하세요.”

아. 목소리를 듣고 강태산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꿈에도 그리던 그녀다. 방 밖에선 맛있는 된장국 냄새가 났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밥의 열기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강태산이 급히 물었다.


“그쪽 이름이 뭡니까?”

[루시.]

“루시. 모습을 볼 수는 없을까요?”

[그대는 저를 볼 수 있는 자격이 없어요.]

“그냥 보는 것도 자격이 필요합니까?”


겁나 비싸게 군다고 강태산은 생각했다.

계속 혼잣말을 했지만 아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그의 기억이 구체화 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루시는 잠시 뜸을 들인 뒤 말했다.


[원래는 안 되는 일이지만······ 오랫동안 봐야할 사이인 것 같으니, 이번에는 예외를 두죠.]


곧 창가 바깥이 일렁이며 빛에 반사되듯 조금씩 투명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윽고 강태산은 자신의 눈에 투영 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하며 얇게 미소 지었다.


“고맙습니다.”


저승사자라고 했지만, 막상 모습을 보인 건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공중에 떠있다는 걸 제외하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비현실적인 미(美)를 갖추고 있었다. 어지간한 남자라면 단번에 반할 것이다.

그러나 미모보단 다시금 그녀를 만나게 해준 루시에 대한 고마움이 더 컸다. 비록 진짜는 아니라지만 그것만으로도 감회에 젖을 수 있었다.

순간 루시가 딱딱하게 굳었다.

저승사자 역할을 하며 고맙단 말을 마지막으로 들어본 게 언제였을까.


[······ 별 일 아니에요.]


강태산이 내심 혀를 찼다. 아깝다. 웃으면 더 예쁠 거 같은데.


[강태산, 부디 이 세계를 즐겨주세요. 이후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면 저를 불러주시길.]


작게 고개를 숙인 루시가 어딘가로 날아갔다.

한참이나 그 모습을 바라보던 강태산이 몸을 돌렸다.


‘허공답보라니. 루시는 절세의 고수인가?’


물론 저승사자이니 하늘 정도는 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태산은 열렬한 무협 독자였다. 무협 깨나 읽었고 공중에 떠오르는 기술을 허공답보라 칭하며 절세의 고수만이 사용 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물론 허공답보와는 거리가 먼 마법의 힘이지만 그런 걸 알 리 없는 강태산은 자신의 상상을 약간 덧붙였다.


‘나도 수련하면 하늘을 날 수 있을까.’


남자라면 한 번쯤 모두가 해보는 망상. 특히나 강태산은 어렸을 때부터 그러한 기질이 강했다. 중2병 말이다. 어른이 되며 고쳐졌지만 가슴 한 켠에는 어렸을 때의 꿈이 버려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늦장부리지 말고 밥 먹어요.”

“으응.”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며 강태산이 식탁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먹는 된장국의 맛은 예전과 다를 게 없었다.

기억 그대로. 달라진 게 있다면 오랜 시간 쌓인 자신의 지방뿐이었다.


‘이건 상상의 힘만으로 안 되는구나.’


아직 안 죽었다고 했다. 상상의 세계에서 강태산의 몸만이 유일하게 실재하는 셈이었다. 당연히 상상만으로 몸이 변할 리 없었다.

강태산은 웃으며 예전의 몸을 되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머릿속으로 도심을 그렸다.

이후 도심을 한 바퀴 돌았다.

바깥엔 정말 아무도 없었다.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도심에서 살아가는 강태산에게 있어선 무척이나 이질적인 광경이었다.


‘딸과 아내를 제외하곤 한 명도 떠올릴 수가 없군.’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 가족. 그 둘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릴 수가 없었다. 강태산이 그 정도로 주변에 관심이 없었다는 증명일 수도 있지만, 무언가의 제약이 걸린 것 마냥 다른 인물을 떠올리려고 할 때마다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 탓이다.


‘미치도록 어색하네.’


조용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게 이토록 어색한 일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 흔한 벌레소리, TV소리, 차 경적 소리가 전혀 없으니 그제야 이곳이 다른 세상이라는 게 실감되었다.


‘이 체육관도 오랜만인걸.’


결국 유람을 포기하고 상가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는 가운데 ‘이태식 체육관’이란 허름한 간판 하나 걸고 있는 곳에 강태산은 발을 들였다.

추억이 깃든 장소.

형사가 된 뒤로 본격적으로 몸을 쓸 일이 없었다. 야근에 잠복에. 제대로 된 생활이 없으니 몸은 계속 불어만 갔다.

하지만 형사가 되기 전의 강태산은 온갖 무술을 섭렵한 무술인이었다. 행동으로 실천하는 중2병 환자는 이곳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다시 몸짱이 되어보자고.’


형사가 된 지금은 개구리처럼 튀어나온 술 배에, 근육 한 점 없는 푸짐한 몸이 되어버렸지만, 예전엔 화끈한 식스펙의 소유자였다.

이왕지사 시간이 남으니 예전의 몸이나 회복해보자고 마음먹었다.

혹시라도 정말 괴물이 지구에 쳐들어오면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까.


“실례하겠습니다.”


스파링을 위한 무대와 곳곳에 즐비한 운동기구.

사람이 없는 것만 제외하면 완벽했다.


‘적당히 운동하고 있으면 그 영구정지인지 뭔지도 풀리겠지.’


툭, 툭.

글러브를 낀 채 샌드백을 때리며 강태산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리고 5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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