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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스
작품등록일 :
2018.01.06 02:36
최근연재일 :
2018.02.1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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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0,371

작성
18.02.13 08:09
조회
11,316
추천
498
글자
12쪽

현실적응(7)

DUMMY

재현도 그와는 싸우고 싶지 않다. 주천성은 미쳤다. 사고방식 자체가 보통 인간과는 다르다. 미세픽을 발견하자마자 한 게 ‘교배’? 어떻게 그런 사고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분명 후손을 보았을 때 초능력자가 나타났는지 아닌지를 확인해보려고 하는 것이겠지.


그가 맨 처음 현실로 나왔을 때 두려워한 사람이 바로 주천성 같은 사람이다. 능력을 갖추게 된 사람들을 실험실 동물 취급하려는 사람. 주천성은 그럴 능력도 있었고 필요하다면 그런 일을 양심의 거리낌 없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무서운 사람은 가까이 두는 것이 좋다.’ 그건 재현에게도 적용되는 말이었다.


“좋아요. 합시다. 다만 조건이 필요합니다.”

“좋네. 뭐지?”

“제게 자율권을 주시죠.”

“자율?”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합니다. 그러니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내버려 두시죠.”

“하하하. 여태까지 듣던 것 중 제일 웃긴 소리군! 자네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군. 내가 자네와 계약하려는 건 자네를 써먹기 위해서인데 자네를 못 쓰면 내가 왜 계약을 하나?”


그게 재현의 마지노선이다. 아니면 거절하고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주천성은 마지노선 앞에서 멈췄다. 부패했건 미쳐있건 그의 유능함은 확실했다.


“좋아. 하지. 다만 나도 조건을 걸지. 흠. 그래, 자네, 그 아이랑 분위기가 좋아 보이던데 현아랑 결혼은 어떤가?”

“예?”


뜬금없다기보다는 이렇게 식상한 반응이 주천성에게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별로 결혼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 그럼 현실에 있을 때는 나랑 가끔 밥이나 먹지. 어떤가?”

“······.”


그렇군, 주천성은 재현과 비슷한 부류였다. 대화해가면서 상대가 어떤 인간인지 파악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디서 반감을 품는지 상대방을 잘 파악한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지. 쓸모가 있다면, 상대가 어떤 건방진 행동을 해도 봐준다. 반감이 생기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는다.


“좋습니다.”

“그래, 오늘처럼 말이야.”

“그렇게 하죠.”

“좋아. 나는 자네에게 편의를 주고 강제성을 부여하진 않겠네. 하지만 나는 자네에게 일거리를 가져다주지, 클라이언트와 고객의 관계처럼 말이야.”


재현은 희미하게 웃었다.


“재미있겠네요.”


이후로는 재밌는 얘기의 연속이었다.





재현은 현아와 함께 저택 밖으로 나왔다. 주천성, 무서운 사람이다. 인식했다. 현아와 이야기하다 보면 이 아이의 어딘가에 상처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약한 술버릇, 복잡했던 남자관계, 게임에 몰두. 과소비. 이제야 이해가 간다. 주천성 같은 인간 밑에서 자랐으면 멀쩡하게 크는 게 어렵지. 인간을 도구로 보는 사람. 심지어 스스로도 도구로 여길 수 있을 거다.


“아빠가 여권을 새로 발급해줬어. 받아.”

“그래.”


거기에는 재현의 여권이 있었다. 그가 젊어진 이후로 증명사진은 한 번도 찍은 적 없었지만 깔끔하게 나와 있다. 거기다 그의 신상명세가 다 적혀 있다. 재현이 어떤 사람인지 뒷조사가 이미 끝났다는 거다. 친구는 가까이. 적은 더 가까이.


어제 현아와는 길게 대화를 나눴다. 그 이야기 중에는 앞으로의 행보도 있었다. 주현아가 그와 함께 돌아다닐 거다.


“이제 미국에 가보자.”

“미국?”

“그래, 리암 테일러와는 꼭 만나야겠거든. 그리고 독일도.”

“일본은?”

“우선순위가 낮아.”


재현은 통화리스트를 열어서 그녀에게 전화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다시 닫았다. 어차피 그는 이제 잊힌 존재다. 대신 리암 테일러와 통화했다. 그리고 그가 하는 요청을 흔쾌히 승낙했다. 위치가 변경되어서 항공기 하나를 더 예약해야겠다.


어젯밤 현아에게 부탁해서 오늘 오후로 항공기를 끊어놨다. 위스콘신. 애초에 미국은 처음이고 그 주에 가는 것도 처음이었다. 김포공항에 들렀다가 그날 곧바로 미국으로 이륙했다. 그리고 주천성은 그가 약속했던 대로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대범한 건 아니다.


그는 매처럼 조용히 재현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다. 이대로 곧바로 누군가를 만나러 가면 들키기 마련이지. 어딘가에 손톱보다 작은 초소형 감시장비를 부착해뒀을 수도 있다. 문제는, 리암 테일러는 유명인이라는 것이다. 그와 만나는 것 자체는 알려질 수밖에 없다. 왜 만나는지만 모르게 해두면 된다.


대한항공 직항으로 시카고로 갔다. 이민국을 거쳐서 입국신고서 세관신고서 등을 작성한 뒤에 지문채취, 이후 보안검사를 통과했다. 친절한 입국 심사는 덤이었다. 애초에 재현이 가지고 있는 여권은 38세가 아니라 20세로 되어있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스무스하게 통과했다.


38세였다면 얼굴의 부조화 때문에 이런 식으로 통과할 수 없었겠지. 이후 예약했던 그린베이로 아메리칸 항공을 타고 이동해 오스틴 스트로벨 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원래는 위스콘신 주의 도시 그린베이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목적지가 바뀌었다. 리암 테일러는 현재 소여 카운티의 헤이워드라고 불리는 작은 도시에 있었다. 그는 재현과 현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반색을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무슨 일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방향을 바꿔서 그 도시로 향했다.


공항에서 차를 렌트해서 약 4시간이 걸렸다. 위스콘신 콘트리트 공원을 통과해서 플렘보 리버 주립공원을 통과해가는 길이었다. 뒤에 차들이 수십 대가 따라왔다. 따라왔다기보단 목적지가 같은 모양이었다.


분명히 헤이워드는 인구가 그리 많지 않은 작은 도시라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빠져나오는 차는 전혀 없는데 들어가는 차들은 많았다. 호수를 지나서 얼마 안 된 거리에서 멈춰섰다. 도로가 봉쇄되어있다.


앞에 먼저 가던 차에서 전문적인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남자가 나타났다. 재현은 영어에는 젬병이었지만 지난번에 찍어둔 언어번역 1급 덕분에 전부 알아듣고, 또 이야기할 수 있었다.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죠!?”

“물러서십시오. 이 안쪽은 봉쇄되었습니다.”

“······.”


앞에 있던 기자로 보이는 남자가 끌려나갔다. 군인들이 봉쇄선 앞에 서서 그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었다.


“정지. 신분증을 제시하십시오.”


현아는 여권을 보여줬다. 중무장한 미군은 여권을 확인하더니 무전기를 들어서 위쪽에 보고했다. 곧 답신이 왔는지 미군이 철책을 열었다.


“통과하십시오.”


중립적이려고 애쓰지만 그들의 눈빛에서 은근한 기대감이 보였다. 재현은 그들을 살짝 훑어보고는 안쪽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제지당했던 기자가 그들의 사진을 찰칵찰칵 찍어댔다. 군인이 달려서 카메라를 뺏으려고 하자 전력으로 도망치는 기자가 보였지만 신경을 껐다. 철책 뒤에 동물병원 앞 주차장은 전차와 장갑차가 수두룩했다. 그리고 군대의 주둔지로 개조되어 있었다.


안쪽에서 리암 테일러가 나왔다. 장신에 말쑥한 인상, 몸은 슬림한 체형이었다. 그는 군용보호장구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그냥 방탄복이 아니라 소프트스킨의 방검복을 입고 있었다.


재현은 리암 테일러의 얼굴을 예전에 익혀 두었지만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현아는 한 번 만난 적이 있는지 가볍게 인사했다. 리암 테일러는 재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와 악수하며 통성명을 했다.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군요. 리암 테일러라고 합니다.”

“최재현입니다.”

“공식적인 요청은 아니지만,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군요. 매우 급한 상황이라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어차피 만날 계획이었으니까요. 이 상황에 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예.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죠.”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의 군인 중에서는 한술 더 떠서 사슬 갑옷을 착용한 사람도 몇몇 있었다. 중세에서나 나올법한 사슬 갑옷을 입고 있는 자를 보고 조금 어이가 없었다. 예전 경찰특공대에서 사슬 갑옷을 쓴 적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시대가 어느 땐데.


“몬스터가 특정 포탈에서 역류한다는 것은 아실 겁니다.”

“네, 들었습니다.”

“하지만 몬스터만 역류하는 것은 아니더군요. 그쪽 세계의 바이러스까지 역류했습니다.”

“······.”


저항력이 없으면 타 세계의 바이러스는 아무리 그 세계에서 가벼운 것이라도 치명적인 질병이 된다. 그 옛날 제국주의 시대 때 남미인들이 백인들에게 멸종당하다시피 했던 것은 학살보다는 질병의 전파가 컸다. 천연두로 잉카제국을 정복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우리가 흔히들 알고 있는 좀비 바이러스입니다.”

“예?”


그것조차도?


“아마도, 룰북에서 봤던 플래쉬갓 아포칼립스 포탈에서 빠져나온 것이겠죠. 매우 다행스럽게도 공기 중의 전파로는 퍼지지 않지만, 이빨로 감염되는 것은 우리들의 상상과 똑같습니다. 좀비에 대한 대응은 예전부터 매뉴얼이 있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군요. 지금은 일손이 매우 부족합니다. 히어로라고 명명하고 처분을 결정하는 중이라서요. 급한 대로 부르고 있긴 하지만 아직 인원수도 적습니다.”

“그럼 이 도시에는 좀비들이 가득합니까?”

“예. 군부대를 동원해서 봉쇄선을 확실하게 쳤지만, 안쪽에서 일어난 공황 상태에는 간섭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좀비들은 걸어 다녔으면 좋겠지만, 재빠르게 달리더군요. 더군다나 머리도 좋아서 벌목용 도끼 등을 들고 무기도 휘두릅니다.”


그래서 사슬 갑옷이 있는 모양이었다. 안쪽에 플레이트 판을 삽입해서 최고도의 방검 레벨을 만들어뒀다. 제압용이겠지.


“문제는, 이 도시의 시민들만 감염된 것이 아니라 포탈 안쪽에서도 좀비들이 뛰어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군요.”


재현은 기시감을 느꼈다. 움카르가 미궁을 침범하는 방법이랑 비슷했다. 움카르가 막대한 물량을 집어넣는 거라면 이쪽은 막대한 물량을 만드는 것이다. 그 뒤에 자신들의 부하도 투입하고.


“안에 살아서 숨어있는 사람들도 많아서 대량학살 무기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구조하는 게 우선입니다. 마침 히어로가 필요했었는데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셔서 다행입니다.”


처음부터 돕기 위해 왔으니까 그의 요청은 승낙한 상태였다. 하지만 히어로라니, 영웅으로 번역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후는 작전 브리핑이었다. 이미 그들이 오기 전에 온갖 화학탄도 써보고 수면, 마취도 해봤으나 전부 소용없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 괴물들은 매우 위험하고, 과다행동(hyperactive)적이었다. 행동통제는 소용이 없다.


군인들이 도로를 점령해서 이동하면 공중에서 헬기가 지원, 좀비들을 밀어버릴 예정이었다. 이후 생존자들을 위해 방역소도 설치했다. 도시에 바이러스가 잠복 되어있을 수도 있으니 모두 방독면을 쓰고 있었다.


재현과 나머지 두 미세픽도 방독면을 받아서 착용했다. 그들은 평범한 감기나 수두, 홍역 같은 질병에 더는 걸리지 않겠지만 근원이 마법에 있는 독과 질병은 그들의 몸도 갉아 먹는다.


중무장한 미군이 효율적인 방법으로 좀비들을 끌어들였다. 화력 과시였다. 장갑차에 거치된 중화기가 불을 뿜자 전방에 서 있던 십여 마리의 좀비가 녹아버렸다. 하늘 위에서는 신형 건쉽이 날고 있었다. 미사일과 발칸포, 전투 드론, 고화력 레이저를 다수 장착하고 있는 건쉽이 하늘을 날면서 정밀 사격을 했다.


리암 테일러는 고도의 정신력으로 온갖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 흔히 사이킥(Psychic)이라고 부르는 염력계열 계통을 사용했다. 그가 정신적 압제능력으로 포탈을 닫아버릴 것이다. 현아는 패닉에 빠져서 돌발행동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재현이 맡은 일은 혹시나 있을 변종들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눈앞의 것들은 건쉽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오히려 그의 일이 제일 적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예상대로 순조롭게 좀비들이 녹아내렸다.


하늘에서 쏘아대는 발칸포는 아스팔트와 함께 연약한 좀비들을 통째로 갈아버렸고 레이저 사격은 정밀 조준해서 특정 좀비들을 노렸다. 지상 병력의 화력도 무시무시했다. 전차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최대한 민가에 피해가 가지 않게끔 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작가의말

어제 꿈을 꿨습니다.

여자친구가 생기는 꿈이요

썸좀 타다가 고백하고나니까 꿈이라는 것을 깨달아버렸슴니다. 그 이후 깨버렸습니다. 시간을 보니 1시간도 지나지 않았더라고요 


Aㅏ..... 이것이 일장 춘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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