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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스
작품등록일 :
2018.01.06 02:36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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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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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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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87
글자수 :
260,371

작성
18.01.26 11:00
조회
15,366
추천
568
글자
13쪽

라비린스(5)

DUMMY

대충 정비를 끝마친 재현은 머릿속에 기억해뒀던 길을 따라서 한쪽이 막혀있는 코너를 찾아서 쉬기로 했다. 인벤토리에서 생수병을 꺼냈다. 준비가 철저한 편인 재현은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서 인벤토리에 식수를 보관하고 있었다.


이더데인의 아이템을 보관할 때에는 자신의 물건만 보관할 수 있었지만, 현실계의 물건을 보관할 때는 설령 훔친 물건이라도 손에 닿는 물건은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었다. 딱 봐도 밀수나 도둑질이 성행할 법한 룰이었다.


그야 재현이 알 바 아니다. 인터넷에서 주문한 전투식량을 하나 깠다. 꾸역꾸역 3인분의 전투식량을 먹어치웠다. 안 그래도 고칼로리 전투식량 때문에 재현은 속이 더부룩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지금 같을 때가 아니면 딱히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밥 먹고 나서도 계속 전투를 해댈 테니 일반적으로 먹게 되면 칼로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재현은 프리즘을 꺼내서 멍하니 허공을 보고 있었다. 너무도 빠르게 달려와서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인간을 선별한다는 건 무슨 뜻이고 자격을 얻게 된다는 건 어떤 뜻일까? 재현이 돌아가신 부모님께 물려받은 교훈 중에는 이런 말이 있었다.


‘의문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


그래. 아무리 다그치고 재해석해 보려고 해봐도 소스(source)가 한정되어있는 이상 모든 것이 추측일 뿐이다. 재현은 담배가 당기는 걸 느꼈다. 인벤토리에 딱 한 개비만 집어 넣어놨던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한 갑도 아니고 한 개비만 집어넣어 놓은 것은 정말로 최후에나 꺼내려 한 것이다.


재현은 흡연가가 아니다. 지독한 정신적 고통이 재현을 괴롭힐 때 머리를 비워버리려고 하나씩 피울 뿐이다.


재현은 어릴 때부터 이상한 꼬마였다. 밤에 혼자 잠을 잘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실재하는 것 같은 환상을 말이다. 그의 부모님은 그를 데리고 정신적 문제에 대하여 상담을 해봤다. 의사의 설명에 의하면 재현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진 심각한 환영을 본다고 이야기했다.


공포영화를 보면 사람들은 두려움에 차서 밤에 화장실에 가기 어렵다거나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할 수 있다. 하지만 재현은 그 공포영화에서 봤던 모든 것들이 실제로 일어나서 그의 곁에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다. 정말로 현실적인, 실재하는 상상력의 산물. 아직 부모가 재현의 상태를 파악하지 못할 때 봤었던 끔찍한 영화들은 트라우마가 되어 재현을 괴롭혔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재현은 세상을 살면서 얻었던 모든 지식을 상상력으로 풀어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스스로의 머릿속에 망상으로 가득 찬 세계를 만든 적도 있었다. 물론 그것의 현실성은 집어치우고서라도, 그 세계가 공고하다는 사실은 주변인에게 충격을 주었다.


재현이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접하기 전까지는 매일 약을 먹었다. 그러나 가상현실을 시작한 이후로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상상을 억누를 수 있게 되었다. 망상의 세계는 망상으로 변해버렸고 이제 두려움의 존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짓눌러버릴 수 있었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상상력의 산물들을 망각하기보다는 마모시켰다. 피하고 싶었던 것들을 없애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재현은 현실에 적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막 사회에 적응할 찰나, 재현은 부모님의 사고를 계기로 심각한 무기력증을 얻게 되었다.


공허. 저 멀리 빛이 닿지 않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어둠 속이 자신의 감정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재현은 피식 웃었다. 재현이 홀로 다니는 것을 선호하는 것은 누구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니었다. 누구도 재현에게 나 있는 미묘한 구멍을 채워 넣을 수 없었던 것이었다. 타인과 이야기 하면 이야기할수록 그 구멍이 절실히 느껴졌다.


얼마 전에 어둠은 빛의 부재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을 떠올렸다.


“어둠은 빛의 부재가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빛이 밝은데 내 눈앞에는 어둠만이 보이지 않는가.”


통로의 끝은 심연처럼 어두웠다. 빛도 닿지 않는다. 이 미궁에서 빛나는 프리즘은 모래 사이에 낀 돌멩이처럼 이질적이었다. 재현은 몸을 일으켰다. 잡생각은 끝이다. 13구역의 잔당을 정리하고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야겠다. 그리고 경험치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을 해봐야겠다. 재현은 아예 경험치를 1:9로 변경했다. 재현이 1이고 재현이 가진 씨앗이 9였다. 그리고 13구역의 모든 오크를 소탕하기 시작했다.




바닥이 다른 타일로 바뀌었다. 바닥의 색깔이 칙칙한 회색이었다면 이쪽은 군청색 계열의 바닥이었다. 그것으로 재현은 자신이 다른 구역에 도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면부에 피가 묻어있다. 재현은 녹스를 쥐고 그림자 검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발에 무음을 불어넣었다. 또박거리는 단화 소리가 이제 더는 들리지 않았다.


천천히 접근해서 코너를 돈 순간, 재현은 인상을 찡그렸다. 이쪽에는 대량의 오크들이 있었다. 물론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반 토막이 난 오크들이었다. 피와 내장이 흘러넘치고 거의 지옥을 방불케 할 수준의 시체 더미였다. B급 영화에 나올법한 그로테스크한 풍경이다.


재현은 흔적을 조사하다가 벽에 박혀있는 철 조각을 발견했다. 탄환이 온전히 박혀있었다. 벅샷이다. 여기저기 깨져서 제대로 알아보긴 어렵다. 바닥을 내려서 탄피를 찾았다. 12게이지 탄피다. 중요한 것은 이 탄피가 무수히 떨어져 있었다는 거다.


“자동 산탄총?”


한자리에서 오크들이 갈려 나간 흔적이 보였다. 이런 무기를 오크들이 들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플레이어임이 틀림이 없었다. 적으로 돌리면 상당히 골치 아플 것이 틀림이 없었다. 애초에 이더데인 이미테이션에서는 총이 나와도 1차 세계대전 수준의 총기만 나온다. 하지만 블라덱의 대물저격총을 생각해보면 오리진에는 한계 따위는 없는 듯했다.


총 말고는 거대한 체인톱으로 썰려서 위아래가 분리된 오크들이 있었다. 이 플레이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마초적인 게임 주인공이나 할 법한 흔적을 남기고 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가 맨 처음 이더데인―오리진으로 떨어졌을 때 더 강한 무기를 들고 들어올 걸 그랬다. 총은 탄환만 있다면 확실한 화력을 장담하니까.




재현은 아예 온몸에 무음을 둘러서 소리를 차단했다. 은밀하게, 빠르게 움직인다. 이쪽은 완전히 쓸려나간 모양이었다. 오크들이 온몸이 벌집이 되어있는 채로 쓰러져 있었다. 12게이지 산탄의 연사에는 철 방패고 사슬 갑옷이고 우수수 녹아내린 것 같았다. 방패로 막으면 뭐하나, 막을 수 있는 범위 바깥에는 쇠구슬들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와 박히는데.


재현은 발을 멈췄다. 전방에서 괴성을 지르는 오크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양손 도끼를 든 오크 광전사다. 재현은 손을 뻗었다. 레이저 프리즘은 허공에 고정해서 사용하는 형태다. 레이저 프리즘을 이동시킬 수는 없으니 360도 회전할 수 있게끔 고정형 유리 기둥을 설치, 그 위에 레이저 프리즘을 올려둔다. 이름은,


“레이저 프리즘 타워.”


재현은 조용히 말했다. 말한다는 것은 상상력을 구체화하기 좋다. 집중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재현의 눈앞에 레이저 프리즘이 나타났다. 그 프리즘은 타워의 형태로 완성되어서 오크 광전사들의 머리 쪽을 바라보았다. 마력으로 인한 광에너지가 모이고 펌핑된 빛이 고출력 레이저로 변한다.


지이이잉


광전사의 머리를 녹여버리면서 타워가 고개를 돌리자 레이저가 쭉 뻗어 나갔다. 일렬종대를 쓸어버린 타워는 다음 목표를 잡았다. 그러나 목표에 다시 발사하기도 전에 그 자리에 폭발이 일어났다.


재현은 검은색 실로 2m가량의 그림자 랜스를 만들어 왼쪽 손에 장착했다. 무게가 전혀 없지만 언제든지 무게는 부과할 수 있다. 오른손으로 거울 방패를 만들었다. 전면부에 반원형으로 이루어진 방패가 전개되며 폭발 피해를 최소화했다.


목표는 오크인 듯했지만, 오크가 폭발하면서 터지는 살점이나 파괴된 무기들이 재현의 거울 방패에 툭툭 부딪혔다. 레이저 드론은 그 틈새에서 멀쩡한 모습으로 날아와 재현의 머리 위에 떠 있었다.


연기 사이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약간 기괴한 사람이었다. 흰색 연구복을 입고 있었는데 눈에 다크써클이 가득하다. 하지만 연구복을 입었다고 가냘픈 인상은 전혀 아니었고 완전히 마초적인 근육맨이었다. 한 손에는 소형 로켓 런처를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체인톱을. 어깨에는 거대한 총 두 자루가 교차했다.


“오, 이 거지 같은 기묘한 세상에 빠진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군. 지랄 맞아라.”

“댁은 누구?”


재현의 머릿속에 그는 고상하게 욕하는 마초 연구원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개성적인 인간이 있다는 게 놀랍다. 튜토리얼 도중에 미쳐버렸거나 처음부터 이상한 인간이거나 둘 중 하나겠지. 하지만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것 같다.


“나는 개 같은, 고풍적인 연구실에서 살아남은 듀나블 듀프니스.”

“듀나블 듀프니스? 이상한 이름이군.”

“레이저맨. 그쪽은 누구신가?”

“최재현.”

“그렇군. 레이저맨. 이쪽을 적대할 생각이 있는가?”

“······그렇진 않다.”

“그래 나도 별로 인간이랑 싸우고 싶진 않아. 씨발 같은 오크 개잡년들이 벌레처럼 바글바글하는데 굳이 플레이어를 공격해서 서로 피해를 보면 무슨 소용이야? 손쉽게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몹이 이렇게나 많은데.”


재현은 판단했다. 이 사람을 믿을 수 있을까? 믿을 수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없지도 않다. 그 말마따나 잡기도 힘든 플레이어를 뒤통수쳐서 얻는 경험치는 바글거리는 최고 난이도 오크를 잡아서 먹는 경험치보다 못하다.


더군다나 재현과 듀나블은 무기도 다르고 스타일도 달라 보였다. 딱히 잡아서 얻을 아이템이 겹치지는 않는다는 거다. 물론 세상에는 못 먹을 아이템을 위해 얼마든지 뒤통수를 치는 놈도 많다.


“그럼 이렇게 하지. 난 어차피 처음 만난 그쪽을 믿지는 못한다. 듀나블. 그러나 내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나도 그쪽에 전혀 간섭하지 않겠다.”

“데면데면 하자고? 나야 아무래도 상관없지. 사냥 경쟁? 좋아! 잘 가라고 레이저맨.”


아예 따로 떨어져서 행동하기로 했다. 재현이 그를 믿기에는 몇 가지가 좀 부족했다. 완전히 초면이라는 점. 튜토리얼에서처럼 운명으로 엮여있는 사이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무식한 화력 투사 방식의 공격에 스플래쉬로 데미지를 입을 수 있다는 점. 조금 전에도 오크들에게 로켓을 발사한 듯싶었지만, 오크들의 육편이 재현에게까지 튀었다. 뼈가 가속하면 총알과도 같은 위력을 낼 수 있다. 여러 면에서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는 않다.


재현은 그를 멀리하고 다시 오크를 사냥하기 시작했다. 수가 많으면 레이저로 조절하고 나머지를 근접에서 처리하는 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랜스, 롱소드, 폴암같은 형태로 수십 번씩 그림자 무기를 조절했다. 그 과정에서 정보를 얻었다. 이 구역이 12구역이라는 점. 하이로드는 미궁 중앙에 있는 방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미치광이 오크들이 있다는 거다.


듀나블과 헤어져서 혼자 사냥했다. 그리고 얼마 전 그가 돌아왔던 장소를 갈 계획이 생겼을 때 그 장소에서 시체가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유는 금방 알았다. 어떤 짐승이 오크를 뜯어먹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오크가 오크를 뜯어먹고 있었다.


기형적으로 팔이 늘어나고 원숭이처럼 움직이는 오크였다. 시체가 된 오크들을 뜯어먹고 있었다.


“정신이 나갔군.”


재현은 가볍게 놈의 멱을 따버리고는 움직였다.


“이곳은 13구역의 미궁과는 구조도 달라.”


격자형으로 블록이 늘어선 13구역과는 달리 12구역은 정말로 미로로 이루어진 듯 길이 제각각이었다. 여기저기 막혀있는 곳이 매우 많았고 오크들이 숨어있을 만한 장소 또한 많았다. 바로 이렇게.


“!!”


미궁 한쪽에 뚫려있는 구멍 속에서 암살자 오크가 나타났다. 두건으로 눈 아래를 가리고 양손에 단검을 든 암살자 오크는 재빠르게 재현의 앞으로 돌격했다. 재현은 그림자로 레이피어를 만들어서 더 빠르게 암살자 오크의 미간에 검을 찔러 넣었다.


리치의 차이에서 져버린 암살자 오크는 그대로 절명했다. 기습 공격인데도 재현은 침착하게 반격해냈다. 이미테이션에서 재현은 검사, 마법사, 궁수, 암살자 등 수많은 직업을 플레이했었다. 그 경험 속에서 이런 암살자는 그야말로 뻔했다. 요는 반사 속도의 문제다.


작가의말

심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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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외전] D.D의 즐거운 감시생활(1) +30 18.01.30 11 0 17쪽
31 라비린스(7) +44 18.01.29 11 0 13쪽
30 라비린스(6) +21 18.01.27 10 0 13쪽
» 라비린스(5) +28 18.01.26 12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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