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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스
작품등록일 :
2018.01.06 02:36
최근연재일 :
2018.02.1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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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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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371

작성
18.01.22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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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라비린스

DUMMY

재현은 머리를 쥐어 잡았다. 상상도 못 했다. 포탈이 생성 도중이라는 것은. 이미 생성된 포탈만 봐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못 한 것이다. 그것도 그 많은 장소 중에서도 재현이 있는 위치에 포탈이 생성된 게 우연일까? 재현은 그럴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더데인 월드는 운명의 힘이 강하지만 현실은 우연과 무작위의 종합된 산물이다. 하지만 들어올 생각은 전혀 없었건만 이렇게 된 것도 좀 어처구니가 없긴 했다.


포탈을 넘어온 재현은 일단 주변을 살폈다. 온통 어두컴컴한 세계였다. 재현은 일단 정보를 얻기 위해서 유리로 만들어진 프리즘을 하나 띄웠다. 재현의 머리 위에 둥실 떠 있는 프리즘에서 밝은 빛이 새어 나와 어둠을 밀어냈다.


재현은 통로에 있었다. 뒤는 막혀 있다. 어떤 문처럼 생겼지만, 완전히 돌처럼 굳어버린 듯했다. 이 문은 열리지 않는다. 재현은 앞으로 걸어나갔다. 어둠 속에 그의 발걸음만이 울려 퍼졌다. 단지 발걸음 소리였지만 으슬으슬한 공포가 찾아왔다. 아무것도 없지만, 인간의 상상력은 공포심을 자극한다.


재현은 공포영화나 소설을 싫어했다. 그는 너무 상상력이 뛰어난 나머지 공포영화나 소설에서 나왔던 내용을 놀랍도록 현실적이게 재현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꿈속에서도 구현되어서 재현을 괴롭혔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멀리했다.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면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의도적으로 담대하게 행동하려고 노력해왔다.


재현은 통로의 끝까지 아무 일도 없이 안전하게 도착했다. 이 앞에는 문이 있었다. 시작했던 장소와 같은 디자인의 문이었지만 이 문은 뒤쪽에 공간이 있었다. 재현이 프리즘을 해제하자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재현은 문고리를 당겨서 열었다.


안쪽은 원형의 공동이었는데 방향마다 거대한 조각상들이 있었다. 어떤 조각상은 뱀을 닮기도 했으며 어떤 조각상은 반인반수, 갑옷 덩어리 같은 모양의 조각상이었다. 그리고 조각상 근처에는 대량의 명패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중앙에는 거대한 제단이 있었다. 거대한 제단에는 한 남자가 있었다. 매우 늙은 사람이었는데 수염을 길게 늘어트린 선풍도골의 노인이었다. 그는 굉장히 예스러운 예복을 입고 있었으며 아무런 미동 없이 재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환자여 가까이 오라.”


근엄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재현은 자신을 지칭하는 것을 깨닫고 그의 앞에 다가갔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은 강직한 인상이었다.


“나는 대법관. 그대가 선택할 신을 결정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다.”

“신을 선택해야 합니까?”


신? 무작위로 떨어진 이곳이 어디인지 알았다. 라비린스다.


“그렇다. 신앙이 없는 존재가 미궁에 들어가게 된다면 그대로 잡아먹히게 되지. 이곳 만신전에서는 그대의 선택을 기다리는 신들이, 그대를 선택하고 싶어 하는 신들이 존재한다.”

“몇 가지 질문을 해도 됩니까?”

“얼마든지.”

“반드시 신을 숭배해야 합니까?”

“숭배를 원하는 신도 있고 아닌 신도 있다.”

“어떤 신들이 있습니까?”

“신들의 종류에 대해 가르쳐 주겠다. 주변을 둘러보라. 이 주변의 석상이 바로 대신이다. 그리고 그 석상 주위에 이름만 새겨져 있는 존재들은 소신이다.”


대법관은 설명을 시작했다.


성향은 질서와 중립 그리고 혼돈으로 나뉜다. 만신전이라고 하지만 만 명의 신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10명의 대신이 존재하고 그 외의 소신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외신이라고 부르는 보통은 접근할 수 없는 신들이 존재했다.


대신은 질서신 3명과 중립신 4명 그리고 혼돈신 3명으로 나뉜다. 소신들은 굉장히 종류가 많았고 대신의 휘하에 있었다. 권능이 중첩되는 편이 많았다. 대신 중에 하늘의 신이 있다면 하늘의 신 휘하에는 바람의 신과 구름의 신이 있는 등이었다.


“소신들의 능력이 대신과 겹치는 군요 그들은 왜 존재하는 겁니까?”

“그들도 만신전에서 숭배를 받을 권한이 있다. 소환자를 소환하고 유지하는 것에는 만 명의 신 모두가 공평하게 신앙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감은 없으니 그들에게 권리가 주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그들은 소환자에게 선택받아 신앙을 키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 소신은 자신의 신앙을 이용해 소환자에게 선택받을 가능성이 생겨서 좋고 대신들은 자신의 신앙을 그다지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소환자를 소환할 수 있기에 좋다. 각자 노림수가 있었다. 대신들의 생각에는 다른 하위 신의 권능을 자신도 사용할 수 있으니 대신을 고르리라는 생각. 소신들은 자신들이 선택받을 가능성이 생기면 투자한 신앙을 되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


“그렇다면 외신은 뭡니까?”

“외신은 잊힌 신들이다. 이곳에서 외신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외신의 이름을 불러야 한다.”


재현은 주변의 석상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외신의 이름은 안 적혀 있는데요?”

“잊혔기 때문에 그 이름을 알지 못한 자는 부를 수 없다.”

“······.”


재현은 눈을 굴렸다. 숨겨진 무언가의 냄새가 난다. 이더데인 이미테이션에서도 말했을 터다. 유니크하다는 것은 중요하다.





재현은 상상력을 동원했다. 외신. 대신과 소신 이외에도 얻을 수 있는 숨겨진 신이겠지. 하지만 어떻게 얻는다는 말인가? 이곳에 들어오기 이전의 모든 사람은 이곳의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외신이라는 개념, 그 하나만 갖고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정한다. 외신의 이름은 특별한 진명을 가지고 있는 자가 아닌 이상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왜 존재하는가? 대법관은 더 말하지 않았지만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나 더 가정한다. 이 미션이, 먼저 들어간 사람이 현실 세계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후발 주자는 정보를 공유하게 된다. 튜토리얼에서도 현실로 되돌려주었다. 그러니 이 미션에서 현실로 되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힌트가 있었다. 대법관은 말했다. 선택을 기다리거나, 선택하고 싶어 하는 신들이 있다고. 외신은 분명히 후자 쪽일 것이다. 잊혔다. 이름을 불러야 하지만 그들의 명패는 이 만신전에 존재하지 않는다. 잊힌 신. 대법관은 더 이상의 정보를 주지 않았다. 그들도 이 신앙을 주고받는 메커니즘에 끼어있는지 아니면 그조차도 하지 않는지, 하지만 왜 이곳에 끼어있는지 전혀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없는 신을 찾아야 한다.


“좀 고민해도 됩니까?”

“얼마든지.”


대법관은 그 이상 말하지 않고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재현은 만신전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10방향에는 거대한 대신의 조각상이 있었고 그 좌우로 수많은 명패가 펼쳐져 있었다. 만신전이라고 했지만, 정말로 만 명의 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10명의 거대한 함의적인 개념을 가진 신들과 그 부속 신들이다.


대신들은 이렇다. 생몰의 신, 대지의 신, 전쟁의 신, 운명의 신, 하늘의 신, 지식의 신, 바다의 신, 재물의 신, 혼돈의 신, 질서의 신,


그리고 소신들은 그 휘하의 개념을 가진 신들이었다. 생몰의 신의 경우에는 죽음의 신과 생명의 신을 휘하로 두고 있었다. 대지의 신은 산맥의 신과 광물의 신을 휘하로 두고 있었고.


짚어보면 자연적인 부분과 인간 세상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하는 특별한 개념을 딴 신 열 명이 존재했다.


“우주적 개념에 기반을 둔 신.”


재현은 중얼거렸다. 존재가 불변하는 거대한 진리를 개념으로 삼고 있는 신이 대신들이었고 인간의 감정 같은 사소한 부분들은 그들의 소신이었다. 그렇다면 외신은 뭘까?


소신 중에는 고문의 신도 있었다. 그리고 공포의 신이나 절망의 신도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윤리관에 맞춰서 신들이 입맛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딱히 외신은 도덕적, 윤리적인 터부에 의해서 배척당하지 않았다.


잊혀졌다. 만고불변의 진리에게서 잊혀졌다. 이해할 수 없기에 배척당했다. 이질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모든 신은 인간이 관측하는 진리를 기준으로 대신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 시대의 인간이 관측하지 못했던 진리를 기반으로 대신과 비슷한 힘을 가지게 된 존재가, 바로 외신이 아닐까?


재현은 바다나 대지, 하늘 같은 신들이 대신이 되었다는 점에서 주목했다. 이 개념들은 인간이 행성에서 살았다는 것을 기반으로 제시된 개념이다. 만약 인간이 달에서 생존했다면 이런 개념들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래의 사람들은 우주에 진출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니까 어쩌면 행성 표면의 크레이터 같은 것을 신으로 모실지도 모르지. 바다나 대지는 행성의 부속품에 불과하니까. 고로 이 대신의 개념은 고대서부터 중세까지의 문명을 가진 인간들이 모시는 신들일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이 있었다.


‘우주’.


[우주의 신이 당신을 지켜보는 감각이 느껴집니다.]


알림창이 떴다. 재현은 약간 들떴다. 추론이 맞았다. 우주의 신이 재현을 주시하고 있었다. 같은 방법을 사용해 몇몇 외신들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대법관은 재현에게 시간을 얼마든지 주었으니 재현은 차분히 고민에 들어갔다.


[소멸의 신이 당신에게 관심을 가집니다.]

[불가해의 신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인지의 신이 당신을 보며 손뼉을 칩니다.]

[심리의 신이 당신을 분석하기 시작합니다.]


재현은 몇 가지 존재하지 않는 개념들을 떠올리면서 신들을 생각해냈다. 그러자 그들의 신들이 재현에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개념을 떠올리며 인지하자 그들의 신들이 재현에게 간섭하길 원했다. 어쩌면, 외신은 여기 명패에 적혀 있는 신들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현이 떠올린 수많은 개념은 인간이 살아오면서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들이니까. 상상력의 지속력만큼, 아는 것이 많은 만큼 그들을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신이 무언가 말하려 하고 있습니다.]


재현은 메시지를 보다가 세계의 신이라는 칸을 보았다. 다급하게 말하려는 것으로 보아 다른 방관적인 신들과는 달랐다. 재현은 그 신의 대화를 듣고 싶었지만, 여전히 어떻게 듣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를 선택해야 하는 걸까?


세계라는 단어는 일견 누구나라면 알 수 있는 개념이었다. 행성과 인류 전체를 뜻하기도 했고 집단적 범위나 특정 영역을 뜻하기도 했고 어떤 현상의 범위를 일컫기도 했다. 이런 개념조차 외신에 속한다······.


“대법관님. 세계의 신은 어떤 신입니까?”

“외신이며, 중립신이다.”

“그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이름을 말해야 한다.”

“흠.”


대법관은 말을 끝내자마자 눈을 감았다. 생각한다. 이름. 개념에 대해서 이해하면 그 신이 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지만 이름을 부르지 못하면 그 신에게 신앙을 바칠 수가 없다. 이름을 들어야 한다.


[ ̄ ̄ ̄ ̄ ̄]


재현의 메시지 창이 고장 난 듯 노이즈 낀 화면이 나왔다.


[ ̄ ̄ ̄ ̄ ̄]


재현은 정신을 집중했다. 그가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재현도 그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팔두스]

“팔두스?”


그 말을 듣자 대법관은 눈을 뜨면서 말했다.


“세계의 신과 계약이 성립되었다. 소환자에게 신앙 스탯을 생성했다. 당신이 그 외신의 첫 번째 신도이다. 신앙을 갖게 되었으니 만신전에서 추방한다.”


대법관이 재현에게 손을 뻗자 엄청난 빛과 함께 재현은 땅이 사라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만신전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다시 땅이 생겼다고 느꼈을 때쯤 재현은 눈을 떴다. 맨 처음 그가 포탈에 들어왔을 때처럼 어두웠다. 하지만 재현의 앞에는 미미한 불빛이 떠 있었다.


작가의말

미궁도시처럼 스토리가 전개되진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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