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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스
작품등록일 :
2018.01.06 02:36
최근연재일 :
2018.02.17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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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3,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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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60,371

작성
18.01.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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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
글자
12쪽

현실적응

DUMMY

재현이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돌아온 장소는 현관문 앞이다. 배낭을 아무렇게나 집어던지고 신발을 벗었다. 온갖 미술작품이 걸려 있는 복도를 지나서 걸어갔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샤워부터 시작했다. 거의 넝마가 된 옷을 집어 던지고 재현이 서자마자 저절로 샤워기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온도를 조절한다. 등이 은은하게 빛났다.


재현은 오른손을 폈다. 그리고 그곳에는 검은색 실이 넘실대고 있었다. 오리진 내부에서처럼. 그것은 즉 재현이 겪었던 모든 경험이, 재현의 환각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재현은 스스로가 인식하는 것이 실재한다고 믿는다. 가상현실에 대한 마음가짐조차도 그곳이 또 다른 세계라고 생각하며 플레이해왔다.


검은색 실이 물방울에 닿자 마치 절삭력 있는 물건처럼 모조리 물방울을 두 동강 내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틀림없는 현실이다. 왜 이렇게 되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가 중요했다.


이더데인 ̄오리진에서 얻은 능력을 갖춘 플레이어들이 현실에 대량으로 방출될 것이다. 이들은 특징적이어서 도망칠 수가 없을 것이다. 재현은 옆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어려진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38살의 털북숭이, 건물주 노총각, 돈 있는 딜레탕트, 히키코모리 겸 하드 게이머인 최재현이 아니다. 마치 고등학교 졸업했을 때처럼 어리고 털도 나지 않은 꼬마다. 겉으로만 보면 이제 곧 어른이 될 나이의 그저 그런 소년 중에 불과한 것이다.


나이가 변경된 이들은 모두 오리진 플레이어다. 나이가 많을수록 들키지 않을 수가 없지. 반대로 18살 이하의 미성년자들은 쉽게 들키지 않는다. 그들은 그대로니까. 왜일까? 재현은 생각했다. 뭔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이건 오컴의 면도날이다. 단순하게도 그냥 플레이어 전체를 18살로 만들고 싶은 거다. 주최자들은. 그보다 어리면 거기서 놔두고. 그래야 어느 정도 공정하니까. 그에 관한 파장이나 사회적인 문제점에는 완벽하게도 관심이 없는 거다.


재현은 샤워를 끝마친 뒤 소파 위에 앉아서 양손을 모으고 머리를 기댔다. 어릴 적부터 재현은 현실에 적응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어떻게든 적응해 살아남았다. 바뀐 현실에 대해서 의문을 가질 여유는 없다. 일단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하다. 반짝거리는 인벤토리를 열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룰북이라고 적힌 물건과 세 개의 카드였다.


“룰북?”


룰북에는 몇 가지 내용이 적혀 있었다. 중요한 점은 죽음에 관해서였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죽고 나면 물건은 전부 유지가 되지만, 운명의 조각 점수가 삼분지 일이 차감된다. 그다음에는 이분지 일. 그다음에는 전부다.


전부 차감되면 그 사람은 미션에서 제외되고 모든 물건을 드랍한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이 된다. 따지면 리스크가 없이 세 번의 기회가 있다는 말이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운명의 조각을 떨어트리는 것뿐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지. 필시 패널티가 있을 터.


또 하나 주요점은 포탈의 존재였다. 이건 일종의 게임플레이였다. 강제성은 전혀 없지만 미션에 들어가기 위해서 포탈을 찾아내야 하고 이 포탈은 1인당 1개. 위치는 무작위로 떨어진다. 자신이 원하는 곳을 선택할 수 없다.


“튜토리얼이 끝났으니 본 게임이라는 말인가.”


룰북에 적힌 정확한 문구는 이렇다.


[포탈은 한 명당 한 개를 들어갈 수 있다. 사용된 포탈은 소멸하고 일반인은 볼 수 없다. 연결된 세계는 끝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모호한 문구가 있다. ‘연결된 세계는 끝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게 무슨 뜻인지는 지금은 알 수 없다. 포탈을 들어가야지만 알게 되겠지. 룰북에 적혀 있는 개방된 장소는 다음과 같다.


「플래쉬 갓 아포칼립스.」

이쪽은 일종의 세기말로 현대 시대가 종말하고 난 뒤 악마들이 번성하고 좀비가 사람을 습격하는 멸망물이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이긴 하지만 놀랍게도 현대의 지구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그린월드.」

맨 처음 튜토리얼 했던 장소가 맞지만, 이쪽은 튜토리얼 시점으로부터 약 300년 이후라고 한다. 당연히 그때 했던 것들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떤 장소인지 알고 있다는 점에서 가산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쪽은 난이도가 낮은 듯했다. 안정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린월드를 원하는 것이다.


「라비린스.」

던전으로 이루어진 세계다. 나가는 길과 들어오는 길조차 던전이다. 온 세계는 모두 던전이고 그 던전 안에서 사람들은 살아가고 있다. 미궁 그 자체로 제일 아래까지 내려가는 것이 목적이라고 한다. 만신전이라고 불리는 신들의 권능이 강하기 때문에 그들의 신도가 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우버 6 이더데인」

우버는 본래 이더데인 월드에서 등급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미테이션의 최종 난이도가 우버 5였으니 우버 6는 엄청난 극악의 난이도임이 틀림없었다. 그야말로 이미테이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실제와도 같은 세계일 것이다.


이 모든 미션은 몇 번이고 마음대로 들어갔다가 나올 수 있게 되어있다. 다만 한번 선택한 월드를 계속 들어가야만 하며 선택한 사람은 다른 월드는 들어갈 수 없다. 이건 플레이어들을 분산할 의도로 보인다.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재현은 물을 한잔 마셨다. 그리고 다시 소파에 돌아와 앉았다.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 사이로 회색의 우중충한 건물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온갖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들과 끝도 없이 나타나는 자동차들······.


생각하자.


재현은 플레이어라는 카테고리 안에 속해 버렸다. 이건 선택할 수 없는 결정된 사항이다. 그렇다면 살아남아야 한다. 플레이어들이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키기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어떤 권력자는 30분이 지난 시점인 지금부터 알아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플레이어가 권력자일 수도 있지.


재현은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1번 시나리오.


과정 1. 권력자들은 플레이어들을 알아채고 그들을 자원화한다.

과정 2.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모두 감추고 일부만 발각당하게 된다.

과정 3. 국가 및 권력자들에 의해 플레이어는 전부 발각되고 AI에 의해 엄중히 관리된다.


자원. asset. 인간을 자산화하는 것. 초지능 공동 AI에게 관리되는 나라에서 자주 행해지는 일이다. 예를 들면 일본이나 대만, 그리스, 파라과이 정도가 되겠다. AI는 국가의 관리역할을 하며 국무총리급의 영향력을 지닌다. 그들은 인간을 자산화하며 그들의 직업과 특기를 전부 구분, 분류하며 사회를 유지한다. 이 방식은 선진적이지만 상당히 위험하다. 하지만 이 방식에서 자원에 속하지 않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시나리오 2번.


과정 1. 권력자들은 플레이어들을 알아채고 그들을 사유재산화 한다.

과정 2. 플레이어는 회사나 권력자 개인의 사병이 된다.

과정 3. 국가와 충돌하고 기업이 완벽하게 국가를 대체하게 된다.


극대화된 부익부빈익빈의 격차가 더 심각해진다. 현재 통일한국의 중산층의 숫자는 극히 적다. 모두 거대 기업의 손아귀에 있다. 그들의 생활 전체가 말이다. 빈민 아니면 부자일 뿐이다. 빈민들은 스스로를 빈민이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들의 생활은 이전처럼 중산계급과 동일하거든. 하지만 다른 게 있다. 빚이다. 대출의 단위 수가 다르다. 그들은 살아가고만 있을 뿐인 사람들이다. 튼튼하게 살이 오르면 쥐어짜고 또 살이 오르면 짜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기업은 국가의 파워를 뛰어넘었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모든 국가에서 회사는 국가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국가에 소속된 것이 아니다. 회사의 파워가 커짐에 따라서 국가는 거의 의미를 잃었다. 하지만 아직도 민주정이라는 과정 안에 포함된 이상 시민들의 표는 효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그 표를 관리하는 게 대기업이고 말이다. 이 방법이라면 한국의 최고 기업인 신성 그룹에서 모든 플레이어를 독식하고 그들을 특수한 요원으로 사용할 것이다.


시나리오 3.


과정 1. 플레이어들은 모두 미세픽임으로 스스로 능력을 감춰야한 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과정 2. 미세픽들끼리 서로 힘을 합쳐 특수한 조직을 만든다. 일종의 연맹 같은.

과정 3. 이 조직은 권력자와 거래하며 스스로를 지킨다.


이 시나리오가 제일 마음에 든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여기엔 약점이 있다. 그들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이지. 현대사회에서 금융의 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초능력이 있다고? 그래서 밥 안 먹어도 사나? 생존권을 틀어막으면 플레이어가 버틸 수 없다.


또 다른 시나리오들이 생각났다. 플레이어가 아예 권력자가 되는 것, 신인류를 자청하는 것, 플레이어와 권력자들이 협력하면서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 수많은 희망사항이 들어간 낙관적인 관측론이다. 현실은 냉혹하고 모든 것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느 시나리오에서든 제일 먼저 움직이는 쪽은 어디 쪽일까? 아마도 해커그룹일 것이다. 그들은 소셜 네트워크나 국가의 주민등록증, 사회보장번호 등의 국가공인 신분증을 해킹해서 나이를 대조할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다 싶으면 정보를 캐고 그 정보를 팔아넘길 것이다. 어쩌면 권력자들에 의해서 해커그룹이 움직일 수도 있겠군.


혹은 정부에서 관리부처가 신설되는 것이다. 이건 해커그룹보다 느리다. 느린 게 당연하다. 대부분의 정부 부처의 사람들은 머저리라서 관련 법안을 통과하는데 아무리 빨라도 석 달은 걸릴 거다. 숨어있는 진정한 권력자만이 움직일 거다.


들키게 된다면? 당장 쳐들어오겠지. 특수부대원들을 데리고. 다른 시나리오도 있다. 바로 특수한 능력자가 플레이어를 찾는 것이다. 진명으로 발동되는 파워는 상상 이상이기 때문에 누군가 간파 능력이 있는 경우 길가다가도 ‘앗 저 사람이다!’ 하면 꼼짝없이 잡혀야 하는 신세다.


부정적이라고? 이건 현실이다. 멍하게 있으면 잡아먹히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분명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최악의 가정을 하지 않고 움직인다면 안일한 거다.


재현은 AR렌즈를 끼고 최대규모의 이더데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켰다.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예언자 빼고는 없을 거다. 커뮤니티 사이트는 온통 난리였다. 그리고 TV도 동시에 켰다.


“집단 AR환각에 시달리던 가상현실게임 ‘이더데인 ̄이미테이션’의 플레이어들이 실종된 지 1개월째. 오늘 새벽 12시경 그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는 것을 보고 경찰은 시크릿 사의 ······.”


티비에서는 아직도 헛소리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알 리가 없지만, 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은 확실하다. 단순 실종자들이 돌아온 것이 아니라 더 큰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특수한 능력이 있다는 것. 카드의 존재에 대해서도 보도되어야 한다. 아직 시간이 조금 있다. 채팅방을 찾았다. ‘#1428게임’. 아니고 ‘#1474게임’ 아니야.


‘#튜토리얼’


재현의 직감이 번뜩였다. 이거다. 채팅방의 제목은 튜토리얼이었지만 조건이 1500개 이상이었다. 1500개는 오리진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없었던 수치였다.


[1500방 오픈했습니다. 비밀번호 없음. 방제 보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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