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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축복받은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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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닉스
작품등록일 :
2017.12.30 09:45
최근연재일 :
2018.02.23 12:2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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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596
추천수 :
18,964
글자수 :
306,113

작성
18.02.04 15:37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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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356
글자
12쪽

폭군의 식탁.

DUMMY

폭풍같이 형제들을 압박하며, 변화하는 정일현의 모습에 티비 화면 앞에 옹기종기 모인 사람들은 공감을 하거나,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며 저녁을 먹거나, 이미 저녁을 멋은 탓에 과일 같은 디저트를 먹고는 했다.


정일현이 당당하게 정인철의 면전에서 사실상 전쟁선포를 하면서, 극의 속도가 상승했다. 서서히 진행되어가는 극에 사람들은 집중했고, 정일현을 시작으로 서서히 반기를 드는 사람들의 모습에 이전과는 달리 조금 약해진 모습으로 심경의 변화를 느끼는 정인철의 모습에 박수를 쳤다.


이전이라면 피지배자들의 반란에 가볍게 힘으로 그들을 찍어누를 정인철이었지만, 마음이 약해진 것인지, 아니면 힘을 조금 잃은 탓인지는 몰라도, 그는 변해가는 자식들처럼, 그 자신 역시 서서히 변해갔다.


성공이라는 목표물을 향해 무작정 전진해가며, 자신의 방법만이 오로지 옳다 생각했던 정인철이었다. 마냥 그것을 욕할 수는 없었다. 그와, 그와 비슷한 삶을 살아간 가장들이 그렇게 되어버린 것은 그들이 사악한 마음을 가진 것 때문만이 아니었으니까. 시대, 사회, 가정, 그리고 책임감으로 만들어지고, 변질되어버린 사람들이 그들이었으니까.


수십 년간 집착처럼 가져온 목표이자, 결과물인 성공이 사라지자, 그 집착에 변질되었던 마음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정인철이라는 가정의 폭군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화라..”


정인철은 집을 나가버린 정일현의 방을 둘러보다, 만화책 하나가 눈에 밟혀 그것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한때 자신도 참 많이 보았던 놈이었다. 잘 살기 위해서, 멋들어지게 성공하기 위해서 일생을 바쳤던 정인철이었지만, 그 역시 만화나 소설 같은 걸 붙잡고 읽었던 때가 분명 있었다. 성공이라는 놈을 향해 향할수록 몸은 지쳐갔고, 지친 몸에게 필요한 것들은 그런 찰나의 재미였다.


책장의 끝에 숨기듯 꽂힌 만화책을 꺼낸 정인철은 몇 번이고 만졌다. 아들의 손때가 많이 타 있었다. 그 손때를 만지다가, 정인철은 무심한 듯 책장을 넘겼다. 언제부터인지 저급한 것이라는 생각에 만화와 그 비슷한 놈들을 멀리하고, 멸시 했었다.


그처럼 언제부터 멸시했던 것들을 수십 년이 지나, 이 나이에 보고 있다는 사실이 우스웠지만, 정인철은 더 이상 그것들을 찢어버리지 않았다. 아들의 침대를 의자삼아 앉아,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기면서, 만화들을 보았다.


만화들을 천천히 읽으며, 정인철은 웃기도 했고, 울기도 했고,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분노하기도 했다. 저급한 것이 아니라, 만화라는 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었다. 성공을 위해, 일평생 숨겨왔던 감정들에 충실하면서.


그리고 큼지막한 티비로 그런 정인철을 바라보는 중년의 남자가 있었다.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꼬고, 팔짱까지 낀 남자는 제법 잘생긴 편이었다. 미중년이라 칭하더라도 좋을 정도로. 무언가 불편해 보이는 남자의 얼굴에, 옆자리에 앉은 그의 아내는 빙긋 웃으며 물었다.


“다른 거 틀까?”

“놔둬. 잘 보고 있어. 뭐 어떻다고.”


아내의 물음에 그는 무심하게 답했지만, 묘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울을 보는 것 같은 일들은 그를 자극했다. 그것이 괜스레 마음에 걸려서 지금 그가 취한 다소 불편해 보이는 자세를 만들었다.


“드라마에 나와도 이런걸..”

“난 손승민 나와서 좋아.”

“나한테는 망할 놈의 손승민이야.”


일부러 보란 듯이 이런 드라마에 출연하는 아들을 생각하며, 남자는 불편한 표정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이상한 기분에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싶었지만,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는 결국 꾹 참았다.


“한 대 태워. 복잡해 보이는데, 이런 때는 태우고 싶으면 태워야지. 베란다 가서 태우고 와. 너무 많이는 피우지 말고.”


티비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툭 던진 아내의 말에 남자는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야 말았다. 귀신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내색하지 않더라도,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했다. 아내의 배려에 감사하며, 그는 말없이 담배 한 갑과 낡은 라이터를 들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베란다로 나온 남자는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며, 생각에 잠긴 것인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다. 가을바람이 매섭게 불었지만,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렇게 몇 대를 태우고 나서야 남자는 담배를 잠시 내려놓았고, 재떨이에 걸쳐둔 담배는 천천히 타들어갔다. 담배를 잠시 놓은 그는 휴대폰을 몇 번 만졌다. 기분이 이상했다. 자신이 바뀌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다 말한 아들의 말을 전해준 아내의 얼굴도 떠올랐다.


“뭘 바꾸라는 거야.”


그는 눈앞에 그의 아들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물었다. 그에게 아들의 말은 이유모를 말들이었다. 지금까지는. 그깟 광대짓에 홀려서 집 나간 놈이기는 해도 아들이라는 생각에 아내의 옆에서 함께 챙겨봤던 드라마였다. 그것을 보며 아들이 말한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의 뜻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폭군이라..”


괜히 마음을 찌르는 두 글자에 남자, 한명학은 씁쓸하게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귀신같이 자신을 요리하는 아내와는 달리, 자식들에게 그는 분명 저 망할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폭군같은 사람이었다. 전에는 코웃음을 쳤겠지만, 지금은 유독 폭군이라는 두 글자가 가슴에 꽂혔다


폭군이라는 글자를 되뇌던 한명학은 무슨 결심이 든 것인지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냈다.


한 남자가 결단을 내린 그때, 신우는 눈앞에 산더미처럼 쌓인 대본들을 하나씩 집어 살펴보고 있었다. 모두 그에게 온 대본들이었다.


아직 폭군의 식탁의 촬영이 한창 남았기에 드라마 중에서 어느 정도 촬영이 겹칠 것 같은 것들을 제외한 대본들이었다. 영화는 몰라도, 드라마는 웬만하면 폭군의 식탁에 오롯이 집중하고 싶었다.


“어느 세월에 이걸 다 보나..”


대본들을 열심히 보면서도 막막한 것인지, 신우는 한숨을 쉬며 천천히 대본들을 살폈다. 물론 하나하나 다 살펴보지 않고, 제목들만 슬쩍 확인해서 성공할 작품을 골라내는 방법도 있었다. 그는 미래를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폭군의 식탁을 통해 자신으로 인해 작품의 흥망이 바뀐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신으로 인해 성공할 작품이 망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한신우라는 배우는 원래 지금 영화, 드라마판에 존재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렇기에 과거의 흥망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모든 것이 바뀌었으니까.


물론 미래에 성공할 작품들을 우선순위에 두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억에 없는 작품을 걸러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것들 역시 소중한 작품들이었고, 그리고 설사 지금 당장의 ‘가제’가 그의 기억 속에 없다고 해서, 이것이 미래에 망했던 작품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가 기억을 못했을 가능성도 있고, 가제를 붙여놓고, 그 가제를 따라가지 않는 작품들도 많았으니까.


신우는 자신의 출세작이 될 가능성이 높은 폭군의 식탁을 선택 했던 것처럼, 자신의 감을 믿기로 했다. 조금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미 몇 번 바뀐 세상, 또 바뀔지도 모르는 거, 그냥 마음 편하게 여가 생활을 즐긴다, 생각하면서 대본들을 하나씩 읽으며, 그 중 가장 마음이 가는 작품과 배역을 선택하는 게 나았다.


그렇기에 다소 귀찮더라도 신우는 촬영이 없는 날이나, 촬영이 좀 편했던 날에는 언제나 대본을 읽었다. 다 읽는 게 한 일 년은 걸리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쌓인 대본들이었지만, 천천히 열심히 읽다 보니, 거의 다 읽은 상태였다.


그 정도 읽고 나자, 어느 정도 결정도 내렸다. 마음에 드는 대본이 몇 개 있었다. 원래는 이 시기에 참 힘들게도 살았던 만큼, 폭군의 식탁 외에는 다른 드라마나 영화를 본 적이 없어서 정일현처럼 기억에 있는 영화가 드라마가 아니었지만, 마음에는 들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아직 대본들이 조금 남았기에 조금 더 봐야하겠지만, 사실상 결정은 거의 내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남은 대본들 중에서 더 좋은 게 있고, 그게 또 마침 이미 마음에 있는 것들과 촬영이 겹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달달한 밀크티를 마시며, 마치 책을 읽는 느낌으로 대본 하나를 집어 쭉 읽던 신우는 요란하게 전화가 울리자 잠시 대본을 내려놓았다. 책상 위에서 신우 그가 좋아하는 노랫소리를 내는 휴대폰을 보며 신우는 묘한 기운을 받았다. 왠지 모르게 묘한 그것을.


잠시 휴대폰을 쳐다보던 신우는 이상하게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킨 뒤, 휴대폰을 집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모르는 번호였지만, 익숙한 뒷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연결했고, 익숙한 목소리에 신우는 눈을 감았다.


“여보세요? 누구.. 십니까?”

-나다.


짧디 짧은 한마디 말이었지만, 그 한마디 말로 신우는 상대방을 알아차렸다. 그에게는 아주 오래전 들었던 목소리였고, 말투였지만, 그 만큼 오랫동안 함께했던 목소리와 말투였다.


“오랜만이네요.”

-사 년만이니, 오랜만이기는 하구나.


그 말에 신우는 피식 웃었다. 그에게는 사 년의 다섯 배의 기간인 이십 년 만에 듣는 아버지의 목소리였지만, 과거로 돌아온 만큼, 상대방에게는 사 년 만에 듣는 아들 목소리였다. 시간의 차이가 있기는 했지만, 둘 모두 꽤나 오랜 시간이라는 건 똑같았다.


“번호는 어떻게 아셨어요?”

-네 엄마가 알려줬어.

“엄마가요?”

-괜한 짓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내가 먼저 전화를 걸 줄은 몰랐네.

“저도 아버지가 먼저 전화 하실 줄은 몰랐어요.”


언젠가 자신이 먼저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신우였지만, 설마 아버지가 먼저 연락을 해올 줄은 몰랐다. 분명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고, 먼저 전화를 걸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먼저 굽히는 행동을 졌다고 생각하고는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신우 자신도 그다지 다르지는 않았다. 그 고집이나 자존심을 물려받은 것인지, 처참하게 망해버린 자신이 부끄럽고 또 자존심 상해서 연락을 하지 않았었으니까. 이렇게 보면 참 많이 닮은 부자였다.


“왜 전화 하셨어요?”


신우는 분명 집에 들어오라는 말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것 말고는 아버지가 먼저 전화를 할 이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내뱉은 말은 예상 밖의 말이었다.


-오랜만에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자.


뜻밖의 말에 신우는 이제는 완전히 웃고야 말았다. 이상하게 웃음이 나왔다. 잠시 클클거리던 신우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밥 먹이고 가두시게요?”

-내가 왜? 자기 좋아하는 일 때문에 집 나간 놈 뭐 하겠다고 잡아둬? 먼저 독립한 셈 칠 테니까, 와서 밥이나 먹고 가.

“모레 갈게요. 그때 시간 남아요.”

-그래, 멋지게 차려입고 와라. 잘나게 하고 와. 그 짓, 아니 그 일 좋다고 학교도 때려치우고 나간 건데, 성공한 모습이라도 봐야 마음에 좀 괜찮겠어.

“선물도 빵빵하게 들고 갈게요. 저도 제 자존심 때문에라도 잘난 모습 보여줘야 하거든요. 집은 그대로죠? 저 없을 때 막 이사하거나..”

-돈 아깝게 그런 짓을 왜 해? 그대로니까, 그냥 와.

“모레 저녁에 갈 테니까, 맛있는 거 해놓고 기다리세요.”


그렇게 말한 뒤 호기롭게 전화를 끊은 신우는 클클거리더니 이내 정색하며 생각에 잠겼다.


“집이 어딨더라..”


긴 세월은 집 주소를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서 물어볼까 싶었지만, 상당히 쪽팔렸기에 신우는 기억해낼 때까지 자신의 머리를 혹사시키는 것을 선택했다.


작가의말

이질점이 생겨난 것은 큰 것을 바꾸기도 하지만, 작은 것도 바꾸는 법이죠. 한신우라는 사람에게는 분명 큰 일이겠지만.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두통 때문에 끙끙거리다가 이제야 다 써서 올리네요. 부족하지만 재밌게 보시고, 늦었지만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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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배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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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운명의 선택. NEW +13 11시간 전 1 0 12쪽
56 의거(義擧) +18 18.02.22 1 0 14쪽
55 마지막 식탁. +16 18.02.21 3 0 14쪽
54 의거(義擧) +11 18.02.20 1 0 11쪽
53 의거(義擧) +15 18.02.19 3 0 11쪽
52 끝장나게 좋은날. +23 18.02.18 3 0 15쪽
51 의거(義擧) +9 18.02.17 5 0 11쪽
50 의거(義擧) +20 18.02.16 8 0 10쪽
49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13 18.02.15 5 0 11쪽
48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16 18.02.14 6 0 12쪽
47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7 18.02.13 5 0 11쪽
46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9 18.02.12 7 0 11쪽
45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13 18.02.11 12 0 10쪽
44 신의 아들. +23 18.02.10 11 0 13쪽
43 Re Star t +15 18.02.09 7 0 11쪽
42 Re Star t +13 18.02.08 10 0 11쪽
41 Re Star t +9 18.02.07 12 0 11쪽
40 폭군의 식탁. +21 18.02.06 13 0 10쪽
39 폭군의 식탁. +14 18.02.05 14 0 15쪽
» 폭군의 식탁. +20 18.02.04 14 0 12쪽
37 폭군의 식탁. +9 18.02.03 16 0 11쪽
36 폭군의 식탁. +12 18.02.02 15 0 12쪽
35 폭군의 식탁. +15 18.02.01 16 0 16쪽
34 폭군의 식탁. +15 18.01.31 16 0 11쪽
33 폭군의 식탁. +10 18.01.30 20 0 11쪽
32 폭군의 식탁. +14 18.01.29 18 0 12쪽
31 폭군의 식탁. +11 18.01.28 23 0 11쪽
30 폭군의 식탁. +17 18.01.27 18 0 10쪽
29 폭군의 식탁. +14 18.01.26 19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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