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퀵바


표지

독점 축복받은 배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새글

에레닉스
작품등록일 :
2017.12.30 09:45
최근연재일 :
2018.02.23 12:20
연재수 :
57 회
조회수 :
760,450
추천수 :
18,961
글자수 :
306,113

작성
18.01.28 12:10
조회
13,075
추천
350
글자
11쪽

폭군의 식탁.

DUMMY

커다란 식탁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그들은 죄인이라도 되는 것 마냥,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식탁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들 중 가장 상석에 앉은 남성은 홀로 고개를 뻣뻣하게 세운 채 신문을 읽고 있었고, 마침내 그가 신문을 내려놓았을 때, 고개 숙인 사람들은 일사분란하게 고개를 들었다.


잠시 사람들을 쭈욱 훑어보던 남자는 이내 숟가락을 들어 올렸고, 그가 첫 술을 떴을 때, 다른 이들 역시 수저를 들었다. 저 앞의 남자, 정인철은 폭군이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의 작은 사회를 폭압적으로 지배하는 폭군. 매일 아침 6시, 그런 폭군의 식탁이 찾아왔다.


“정소연, 요새 늦게 들어오던 데, 그딴 식으로 굴면, 쫓겨날 줄 알아. 알겠어? 쯧, 요즘 것들은 부모 등골 빼먹고, 놀러 다닐 줄만 알지..”

“내가 언제 놀러만.. 알았어요. 일찍 들어올 게요.”


정인철의 갑작스러운 지적에 지목을 당한 여자, 첫째 정소연은 순간 짜증이 차올랐지만, 옆구리를 찌르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드는 동생과 다른 가족들의 모습에 결국 묵묵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녀 역시 알고 있었다. 여기서 나서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마저 힘들어 지는 것을. 그렇기에 그저 고개를 숙이는 것 말고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정성연, 넌 아직도 일자리 안 구했어? 도대체 뭐가 되려고 그러는 거야? 비싼 돈 들여서 밥 먹이고 잘 키워 놨더니. 할줄 아는 거라곤 집에서 돈 까먹는 거 말고는 없지 그냥.”

“이력서 넣어 놨습니다, 아버지.”

“그럼 그 이력서 처리 될 때까지 아르바이튼가 뭔가 라도 해서, 네 밥벌이라도 해. 그렇게 집에서 빈둥거리면 누가 돈이라도 준데? 어림도 없지. 내 집에서 내 밥 얻어먹고 살고 싶으면 처신이라도 똑바로 해.”

“네.”


다음으로 지목을 당한 남자, 둘째 정성연은 괜한 밥만 뒤적거리며 힘없이 대답했고, 그마저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정인철은 일부로 들으라는 듯 크게 혀를 찼다. 그것들을 시작으로 그는 쉬지 않고 사람들을 지적해 나갔다.


모두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충고라고 해도 되는 말들이기는 했다. 문제는 방식이었다. 그냥 말하는 정도였다면 잔소리에 불과했을 말이었지만, 정인철은 그런 말들조차도 강압적인 방식으로 하였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고, 그것이 그를 폭군이라 지칭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한참이나 조언을 빙자한 폭언을 하던 정인철은 얼굴 표정을 순식간에 바꾼 뒤, 미소를 띠며 식탁의 말미에 앉은 남자를 쳐다보았다. 정인철의 눈에는 자랑스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정일현, 요새 많이 힘들어 보이던데, 아빠가 보약 한 채 지어 왔으니까, 식후에 하나 씩 먹어라. 나중에 큰 일 해야 될 텐데, 벌써부터 몸 축내면 안 되지.”

“네,”


밥에는 손조차 대지 않은 채, 잔속의 물에 젓가락을 조금씩 적셔서 식탁의 끄트머리에 무언가를 그리던 막내 정일현은 정인철의 갑작스러운 말에 움찔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삼 만원 아래면 카드 준 걸로 사.”

“네.”

“그리고 또 그 같잖은 그림 같은 거 그린답시고 방안에 틀어박혀 있지 말고, 넌 내가 하란대로 공부만 열심히 해. 알았어? 그림은 성공하고 나서, 취미로 해도 안 늦어.”


정인철의 말에 곧잘 답하던 정일현은 마지막 말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에 정인철의 얼굴이 다시금 찌푸려졌지만, 앞서 했던 행동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딱히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못 마땅한 얼굴로 잠시 쳐다봤을 뿐.


정인철에게 정일현은 자랑스러운 아들이었다. 유일하게 밖에 나가서 당당하게 자랑할 수 있는 아들이었고, 멍청한 놈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자랑거리가 된 놈이었다. 멍청한 딸내미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돈 까먹는 것 밖에 못하는 아들들에 비해 혼자서 공부에 두각을 보여, 떡하니 좋은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간 저 놈은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자식이었다. 그 망할 놈의 그림만 아니었다면.


성격이 계집애처럼 소심한 것도 괜찮았다. 고추 달린 놈이 소심한 것이 마음에 안 들었지만, 거기까지는 허용이 가능했다. 문제는 그 놈의 그림이었다. 어떤 개 같은 새끼의 꾐에 빠진 건지는 몰라도, 어릴 적부터 공부도 잘하던 놈이 어느 때부터 갑자기 그 그림이라는 놈이 홀렸다.


그것이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성격은 좀 소심해도 자신처럼 성공한 삶을 살아갈만한 놈이 갑자기 그 그림이라는 놈이 좋다고 미쳐 날뛰는 모습은 속이 탔다. 그것을 바로잡느라 행한 노력들을 생각하면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렇기에 그는 다른 놈들보다 더욱 강압적인 말과 행동으로서 정일현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그가 잘나고 좋은 아들일 수 있도록.


“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알겠어?”

“...네.”


대답을 요구하는 정인철의 말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정일현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정인철 그가 원하는 답을 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것이 그를 미치게 만들었다. 속에서부터, 서서히.


폭군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강력한 통제력을 보여주었고. 피지배자들은 고개를 숙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반란의 꿈을 숙은 고개 밑에 숨긴 채, 사람들은 복종했다.


“오케이!”


성태식의 힘찬 소리를 끝으로, 사람들이 돌아왔다. 좌중을 장악했던 폭군은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 노년을 바라보는 아저씨가 되었고, 반란을 꿈꾸던 아들딸은 달려온 스타일리스트에게 얼굴을 맡겼다. 우울하기 그지없던 막내는 밝게 웃으며 박수를 쳤다.


사람들이 바뀐 것처럼, 장내의 분위기 역시 순식간에 바뀌었고, 스태프들은 벌써부터 여기저기를 뛰어 다니며 다음 촬영을 준비했다. 성태식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박인경과 열심히 대화를 했다. 촬영에 관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첫 촬영을 축하하려는 듯 박수를 치고 다니던 신우는 오용환이 가져온 음료수를 두 통이나 비웠고, 다른 이들 역시 목을 축이거나, 간단한 간식을 먹거나 했다. 그렇게 짤막한 휴식이 끝난 뒤, 촬영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손승민의 경우 시청자들의 리모컨을 사로잡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기에, 초반부터 굉장한 연기력을 뿜어냈다. 다른 채널로의 이동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신우가 맡은 정일현의 경우 초반에는 두각을 보이지 않는 캐릭터였기에 잔잔한 연기력을 보여주었지만, 그러면서도 정확하게 캐릭터를 표현한 탓에 캐릭터가 옅을 뿐 투명해지지는 않았다.


특유의 우울함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지는 않았고, 지금의 정일현에게는 그 정도가 딱 적당했다. 보통 신인 배우들의 경우, 첫 드라마인 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든 받으려 했겠지만, 신우는 결코 선을 넘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분량은 나중에 확보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괜히 오버를 해서 연기를 하며 현장의 분위기와 극의 분위기, 작가가 공들인 캐릭터를 망칠 바에, 대어를 기다리는 낚시꾼의 마음으로 손승민이라는 배우와 정인철이라는 주인공을 적절하게 보조하는 조연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했고, 그것은 박인경이 원하는 바였다.


사실 박인경은 조금 걱정을 가지고 있었다. 대본 리딩 당시 신우가 보인 연기력은 폭발적이었다. 손승민에게 조차 밀리지 않는 폭발력은 대단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거리였다. 저런 폭발력이 초반에 튀어나온다면, 극이 이상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의 걱정이었지만, 신우가 완급조절을 하며 걱정거리가 날아갔다.


걱정했던 것이 하나 사라지자, 박인경은 바보가 되어버린 것처럼, 헤실헤실 웃었고, 신우를 볼 때면 언제나 엄지를 추켜보이고는 했다.


“초반에는 비중이 없어서 속이 상했을 텐데 잘해줘서 고마워요 신우 씨.”

“창고에 화약 쌓아놓는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나중에 좀 크게 터트려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

“어머, 그거 진짜 기대되는데요?”


신우의 너스레에 박인경은 소녀처럼 꺄르르 웃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연기를 잘 해주면서, 말도 저렇게 예쁘게 해주는 배우는 너무나도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번에 겨우 입봉한 신인 작가인 그녀에게는 특히나 더욱 고마운 사람이었고.


신인 작가는 굉장히 무시 받는 존재였다. 앞에 신인이 들어간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경력이 변변찮으면 무시를 당하고는 한다. 그런 변변찮은 경력조차 일천한 신인의 경우 하층민 중의 하층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무렇게나 좌지우지할 수 있는 하층민. 그런 하층민과도 같은 신인 작가들에게 멋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닌, 그들이 원하는 대로 연기를 해주는 배우는 은인과도 같았다.


물론 신우 역시 신인이었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고마운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박인경은 신우에게 감사하며, 그가, 정일현이 폭발할 그 때를 미친 듯이 갈고 닦았다. 고마움의 발로였다.


‘우리 복덩이를 위해서. 내 한 몸 불사른다.’


복덩이는 스태프들이 신우를 부르는 은어였다. 신우의 합류 이후 갑작스럽게 모든 것들이 잘 풀리는 것에 빗대어 그를 이 드라마의 복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던 것이 그 시작이자 이유였다. 제법 어울리는 별명이기도 했다. 저기서 열심히 열연을 펼치고 있는 당사자는 모르는 별명이었지만.


그처럼 조금 낯간지럽지만, 어울리는 신우의 별명을 되뇌며 박인경은 그녀의 대본을 갈고 닦았다. 신우를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초반에 비중이 부족한 대신, 중반부터는 사실상 정인철과 함께 극을 이끌어나가는 주연급 조연이 정일현이었고, 그런 정일현의 좋은 모습은 극의 성공과도 연결이 되었다. 드라마의 성공은 당연하게도 박인경 그녀 자신의 성공과도 연결이 된다.


그렇기에 박인경은 작가로서의 열정을 불태웠다. 폭군의 식탁이 망한다면, 솔직한 말로 그걸로 끝이었다. 손승민이라는 시청률이 보장된 배우를 쓰고도 드라마가 망한다면, 그 드라마의 작가인 박인경은 업계에서 폐기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첫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어쩌면 몇 년 동안 다시 보조 작가 생활을 해야 할 확률이 높았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이제 겨우 입봉했는데, 다시 돌아가야 한다니, 박인경이 몸이 부르르 떨렸고, 그녀는 더욱 독해진 얼굴로 신우를 보았다. 우습게도 그녀처럼, 아니 아예 쌩 신인인 그녀보다는 조금 나은 신인 배우인 그가 드라마 흥행의 키 포인트였다.


촬영이 끝나자마자, 우울함을 벗어던진 채, 다시 웃고다니며, 현장 여기저기를 쏘다니면서 사람들을 돕거나, 이어서 촬영할 대사의 합을 맞추거나 하는 가벼운 모습을 보면, 그에게 스태프들이 붙인 이상한 별명처럼 당사자는 모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어찌 됐든 우리의 중요한 복덩이였다. 한신우는.


작가의말

약 꼬박꼬박 먹었더니, 이제는 많이 나은 듯해영. 열은 엄슴, 목이 겁나 아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빨리 낫는듯.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축복받은 배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독감 걸렸습니다. +17 18.01.24 29 0 -
57 운명의 선택. NEW +13 10시간 전 1 0 12쪽
56 의거(義擧) +18 18.02.22 1 0 14쪽
55 마지막 식탁. +16 18.02.21 3 0 14쪽
54 의거(義擧) +11 18.02.20 1 0 11쪽
53 의거(義擧) +15 18.02.19 3 0 11쪽
52 끝장나게 좋은날. +23 18.02.18 3 0 15쪽
51 의거(義擧) +9 18.02.17 5 0 11쪽
50 의거(義擧) +20 18.02.16 8 0 10쪽
49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13 18.02.15 5 0 11쪽
48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16 18.02.14 5 0 12쪽
47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7 18.02.13 5 0 11쪽
46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9 18.02.12 7 0 11쪽
45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13 18.02.11 12 0 10쪽
44 신의 아들. +23 18.02.10 11 0 13쪽
43 Re Star t +15 18.02.09 6 0 11쪽
42 Re Star t +13 18.02.08 9 0 11쪽
41 Re Star t +9 18.02.07 11 0 11쪽
40 폭군의 식탁. +21 18.02.06 13 0 10쪽
39 폭군의 식탁. +14 18.02.05 13 0 15쪽
38 폭군의 식탁. +20 18.02.04 13 0 12쪽
37 폭군의 식탁. +9 18.02.03 16 0 11쪽
36 폭군의 식탁. +12 18.02.02 14 0 12쪽
35 폭군의 식탁. +15 18.02.01 15 0 16쪽
34 폭군의 식탁. +15 18.01.31 16 0 11쪽
33 폭군의 식탁. +10 18.01.30 20 0 11쪽
32 폭군의 식탁. +14 18.01.29 17 0 12쪽
» 폭군의 식탁. +11 18.01.28 23 0 11쪽
30 폭군의 식탁. +17 18.01.27 18 0 10쪽
29 폭군의 식탁. +14 18.01.26 19 0 12쪽

신고 사유를 적어주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고

'에레닉스'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