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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축복받은 배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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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레닉스
작품등록일 :
2017.12.30 09:45
최근연재일 :
2018.02.23 12:20
연재수 :
5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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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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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8
글자수 :
306,113

작성
17.12.30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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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340
글자
10쪽

End, And

DUMMY

푸르던 하늘이 붉게 타오르더니 점점 짙게 물들어갔고, 태양의 빛에 가려졌던 별들이 색색이 빛을 내어 남색의 하늘에 자수를 놓았다. 그런 별들의 가운데에서 높이 떠오른 달이 고고하게 지상을 내려 보던 그때, 어느 작은 성당 안에 누군가 홀로 외로이 앉아 있었다.


육년, 육년이었다, 남자가 기도를 시작한지도. 첫 기도는 장난스럽게 이루어졌다. 마치 누군가에게 푸념을 하듯이, 두서없이 아무렇게나 말을 주절거렸고, 끝에 아멘이라는 글자만 붙었다 뿐이지, 장난스러운 푸념처럼 첫 기도는 끝이 났고, 그 이후로 기도는 점점 늘어갔다. 무엇이든지 첫 시작이 어렵다는 것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것 같았다.


시간이 점점 지나며 집에서만 행하여지던 기도는 남자가 더욱 간절해지며, 성당이라는 공간으로 옮겨갔다. 물론 미사에 참석한다거나 하는 만큼의 자신감과 믿음은 없었기에 언제나 이렇게 홀로 불 꺼진 성당에 앉아 어둠에 흐릿한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는 이어졌다.


동네 아저씨에게 한탄 하듯이, 주변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듯이, 마치 누군가에게 심정을 토로하듯이 기도를 한 것이 전부였다. 사실 그것을 기도라고 해야 할 지도 솔직히 조금 의문이었다.


하지만 남자에게 있어서 딱 그 정도면 족했다. 빌어먹을 상황에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말하고, 원망하고, 또 간절히 바라고, 딱 그 정도면 남자에게 충분했지만, 그래도 억울한 것은 없잖아 있었다.


정말 신이라는 양반이 존재한다면, 그가 정말로 전지전능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시고, 또 모든 것을 알고, 그것을 행할 수 있다면, 이 작은 몸뚱이 하나, 같잖은 인간 하나 도와줄 수는 없었던 걸까, 육년이라는 세월 동안, 아니 수십 년이라는 세월 동안 간절히 바라왔던 소원을 이뤄 줄 수는 없었던 걸까?


‘정말로 당신이 존재한다면, 당신이 나를 만들었다면, 한번쯤은 내 말을 흔쾌히 들어줄 수는 없으십니까? 당신이 정말로 위대하고, 대단하고, 전지전능하고, 모든 만물의 위에 존재하신다면, 그깟 소원, 그깟 재능, 그깟 연기 수천 번은 더 들어주실 수 있으시잖습니까.“


울분을 토하듯 십자가를 바라보며 남자는 속으로 외쳤다. 그렇게 외치는 남자의 눈에서는 한줄기 눈물도 흘러내렸다. 억울함과 비참함의 눈물이었다. 오늘의 기도는 평소보다 더욱 격했고,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오늘 또 다시 깊은 좌절을 맛보았다. 영겁의 고통보다도 더욱 깊고 깊으며, 너무나도 쓰라린 좌절을.


그는 배우였다. 주 무대는 연극이었지만, 가끔 드라마에도 단역으로 출연하는 그런 배우. 하늘 높이 떠오르지 못한 대부분의 배우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그런 배우였다. 그런 배우였던 그는 몇 달 전, 아니 며칠, 몇 시간 전만 하여도 아주 오랜만에 찾아온 천금과도 같은 기회에 기뻐했다.


그에게 찾아온 기회는 영화였다. 물론 당연하게도 주연이나 조연은 아니었다. 겨우 몇 분 나오고 사라지는 배역이었지만, 그에게 그것은 간절하게 바라고 바랐던, 기다리고 기다렸던 기회였다.


그 기회는 인맥으로 찾아왔다. 그와 같은 연극단 출신의, 갓 들어왔을 때, 짬이 찼던 그가 연기를 지도해 주기도 했던, 허나 이제는 같은 선상에서 같이 마주볼 수도 없는 상대가 준 기회. 그런 기회에 그는 최선을 다했다. 열 줄도 채 안 되는 대사를 외고 또 외우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현장에서도 있는 힘, 없는 힘 다 써가며 그에게 있어서는 최대한 열연을 펼쳤고, 젖먹던 힘을 다해가며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장악력과 힘이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지만, 우습게도 그런 그를 지워버린 것은 그에게 기회를 주었던 사람이었다.


물론 그 사람이, 동생뻘인 그 녀석이 일부로 의도하여 그런 일을 저지른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럴 이유도 없었고, 솔직한 말로 자신과는 급이 한참이나 다른 그를 ‘형님’ 하면서 대해주는, 가끔 극단에 찾아와서 회식을 쏘며 ‘내가 이 사람에게 연기를 배웠다.’ 하고 기도 살려주는 착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더 비참했다.


마치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 듯 행하여진 가벼운 손짓과도 같은 대사 한 번, 눈빛 한 번에 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장면 하나라도 차지하고자 행해졌던 그의 발악은 영화에서는 그다지 중요치도 않은 그 행동, 그 대사 한 번에 그대로 허공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정도였다. 재능이 있는 눈앞의 젊은 배우와, 그런 젊은 배우보다 적어도 두 배는 더욱 경력이 있는 그의 격차는. 굳이 의식을 하지 않더라도, 한마디 대사로 가볍게 찍어 누룰 수 있는, 마치 인간과 개미와도 같은 그런 격차.


그 격차를 그날 그 자리에서 그는 느꼈고, 그것은 미치도록 허탈했다. 결국 끝끝내 발목을 잡은 것은 그토록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재능이라는 놈이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예체능이 그렇듯이, 연기라는 영역에서도 재능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물론 노력도 중요하지만, 노력은 상자, 재능은 내용물이었다. 반대가 아니냐고? 상자가 아무리 작아도 안에 들어갈 것이 황금이라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진 재보라면, 그 상자는 결국 고귀한 것이 된다.


허나, 상자가 아무리 크고 웅장해도, 그 안에 들어갈 것이 똥이라면, 결국 상자는 아무런 가치도, 쓸모도 없는 정화조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알맹이지, 겉의 크기가 아니었다. 물론 알맹이가 물이더라도, 상자가 커다라면, 수천, 수만, 수십만 톤의 물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중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남자의 알맹이는 물이 아니었다. 잘 쳐줘야 오줌 정도?


그런 것이다. 노력을 하여 크기를 아무리 크게 키우더라도, 결국 안에 든 것이 변변찮으면, 그것은 허우대만 좋은 쓸모없는 쓰레기다. 그리고 그것을 남자는 다시 한번 여실히 느꼈다. 언제나 그렇듯이 단 한 번의 촬영에서.


다시금 찾아온 좌절감에, 그는 울었다. 겉으로는 열연에 박수를 치고, 추켜세웠지만, 그 안은 서서히 썩어가는 쓰레기처럼, 퇴비처럼 썩어 문드러졌다.


그렇게 썩어버린 마음은 이곳에 와서야, 작은 성당에 와서야 터졌다. 오늘의 기도는 평소보다 격했다. 재능이 있는 이들과 촬영을 할 때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그의 속에는 서서히 원망이 채워졌고, 그것을 그는 쉬지 않고 토로했다. 그렇게 한바탕 쏟아낸 그는 축 늘어진 채, 성당의 천장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눈물을 흘렸다.


“씨발.”


성당에 들어온 이후 지금까지,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오로지 지금의 단 한마디 욕설이었다. 분명 그것은 한마디에 불과했지만, 그 한마디만큼 그의 마음을 잘 설명하는 것은 없었다. 허탈하게 내뱉은 갈 길 없는 욕설은 허공에서 사라졌다.


“제발, 제발 한번만 들어주시면 안 됩니까? 제가 그토록 바라왔는데, 그거 한번 못 들어 주시나요?”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저 위에 계신 분께서 분명 들어주실 겁니다.”


성상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그는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그것에는 신부복을 입은,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은 노신부가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신부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곧바로 사과를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군가 기도의 탈을 쓴 자신의 지랄을 보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또 혹시나 늦은 시간에 멋대로 성당에 들어온 것에 꾸중을 들을까 싶어서 나온 행동이었다.


노신부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빠르게 성당을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은 처량했고, 평소보다 감정이 격했던 탓인지 땀에 푹 젖어있기도 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노신부는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간절히 바란다면.. 한번쯤은 들어주시겠지요.”


남자를 쫓는 노신부의 눈빛은, 그의 눈빛은, 분명 빛이 났다. 마치 저 하늘 위의 달처럼, 혹은 떠오르는 태양처럼, 아주 환하게


성당을 빠져나온 뒤, 소주 네 병과 안주거리로 짭짤한 과자 하나를 근처 편의점에서 산 그는, 오랫동안 그와 함께했던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비록 낡은 옥탑방이었지만, 그에게는 오롯이 그만의 궁전이었다.


연기에 미쳐서, 그것에 홀려서, 그것을 반대하는 집에서 뛰쳐나온, 아니 집에서 쫓겨난 이후, 여기저기를 전전하던 그가 돈을 조금씩 모아 얻은 전셋방이었고, 이제는 정이 들대로 들어버린 그의 ‘집’이었다. 묘하게 풍기는 기분 나쁜 곰팡내도, 이제는 방향제 향처럼 익숙해졌고 말이다.


옥상의 평상에 앉아,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술을 좀 마시자 그제야 조금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몸에 화끈하게 열기가 감돌자, 기분도 아까보다는 좋아졌고.


“다음 생에는 멋지게! 간지나게! 연기 잘하게 태어나자!”


소주 네 병을 모두 비운 그는 먹다 남은 과자 봉지를 오른손에 쥔 채 비틀비틀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잠시 걸어가는가 싶더니, 그는 그대로 고꾸라졌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영원히 그렇게 누워있을 것처럼.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작가의말

끄아앙 저질러 버렸엉. 저질러 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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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받은 배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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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의거(義擧) +18 18.02.22 1 0 14쪽
55 마지막 식탁. +16 18.02.21 3 0 14쪽
54 의거(義擧) +11 18.02.20 1 0 11쪽
53 의거(義擧) +15 18.02.19 3 0 11쪽
52 끝장나게 좋은날. +23 18.02.18 3 0 15쪽
51 의거(義擧) +9 18.02.17 5 0 11쪽
50 의거(義擧) +20 18.02.16 8 0 10쪽
49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13 18.02.15 5 0 11쪽
48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16 18.02.14 5 0 12쪽
47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7 18.02.13 4 0 11쪽
46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9 18.02.12 6 0 11쪽
45 새로운 것, 새로운 준비. +13 18.02.11 12 0 10쪽
44 신의 아들. +23 18.02.10 10 0 13쪽
43 Re Star t +15 18.02.09 6 0 11쪽
42 Re Star t +13 18.02.08 9 0 11쪽
41 Re Star t +9 18.02.07 11 0 11쪽
40 폭군의 식탁. +21 18.02.06 12 0 10쪽
39 폭군의 식탁. +14 18.02.05 13 0 15쪽
38 폭군의 식탁. +20 18.02.04 13 0 12쪽
37 폭군의 식탁. +9 18.02.03 15 0 11쪽
36 폭군의 식탁. +12 18.02.02 14 0 12쪽
35 폭군의 식탁. +15 18.02.01 15 0 16쪽
34 폭군의 식탁. +15 18.01.31 15 0 11쪽
33 폭군의 식탁. +10 18.01.30 20 0 11쪽
32 폭군의 식탁. +14 18.01.29 17 0 12쪽
31 폭군의 식탁. +11 18.01.28 22 0 11쪽
30 폭군의 식탁. +17 18.01.27 17 0 10쪽
29 폭군의 식탁. +14 18.01.26 1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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